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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엄마 성 빛내기 프로젝트와 성본 변경 청구_최나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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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단법인 동천 작성일24-07-16 10:41 조회27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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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성 빛내기 프로젝트와 성본 변경 청구

재단법인 동천 최나빈 변호사

 

민법 제781조 제1항은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 다만, 부모가 혼인신고 시 모의 성과 본을 따르도록 협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고 규정하여 원칙적으로 부성의 성과 본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헌법 제36조 제1항에서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명시하지만, 성과 본에 있어서는 부성 우선주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2024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에 어머니의 성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모였다. 바로 “엄마 성 빛내기 프로젝트” 참여자들이었다. 참여자들은 서울가정법원 앞에서 부성 우선주의 원칙을 타파하고 엄마 성을 쓰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상을 원한다고 소리 높였고, 전국 법원에 성본 변경 청구서를 제출했다. 이후 위 프로젝트에 공감하여 참여 의사를 밝힌 사람이 150여 명이 넘었고 실제 심판을 진행한 사람도 30여 명에 이르렀다. 


위 프로젝트의 유의미한 성과로, 그 동안 법원이 주로 이혼 가정의 미성년자에 대하여 성본 변경을 허가해온 것과 달리 비 이혼가정인 성인에 대하여 성본 변경 허가가 이루어졌다. 다만 허가 결정문에 구체적인 이유가 적시되어 있지 않아 성 평등 실현 및 자기 결정권의 존중이 담긴 판단인지는 알 수 없다. 법원이 성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참여자들의 마음에 화답한 것인지는 미결로 남아있는 것이다.


한편 참여자들의 상당수는 법원이 친부의 의사 확인을 요하는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법원은 30년 이상 연락이 두절된 친부에 대한 초본 제출을 요구하거나, 친부가 의견 청취에 응답하지 않으면, 친척의 초본 제출까지 요구하기도 했다. 친부와 연락이 두절되어 부의 동의서 제출이 불가능하다고 진술한 경우 조부모의 초본을 요구하기도 하였고, 조부모가 사망한 경우에는 친부 형제자매 중 최연장자의 초본을 요구했다. 


가사 조사 과정에서도 부성 우선주의의 장벽을 경험해야 했다. 참여자가 부성 우선주의로 인한 남아선호사상 등 자신이 겪었던 성차별적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하자, 가사 조사원은 참여자에게 “요즘은 여아를 선호하니 성차별은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는 사례도 있었다. 가사 조사원은 비 이혼가정인 성인의 성본 변경 신청이 허가된 선례를 모르고 있었는지, 참여자에게 특이한 경우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참여자는 조사 내용에는 필요하지 않은 질문과 조사원의 주관적인 발언을 들으면서, 자신의 경험과 가치가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았으며 마치 압박 면접 같았다고 심정을 밝히기도 했다. 이렇듯 편견과 선입견이 반영된 가사 조사가 법원에 전달되어 법원의 성본 변경의 허가 결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까 우려했는데 결국 이 사건에서는 성본 변경이 불허되었다. 친부와의 교류가 오랜 시간 단절된 상황이었고, 친부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 구성원들이 참여자의 성본 변경을 찬성하고 지지했지만, ‘가족 정서 통합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청구가 기각된 것이다. 


대법원은 “성·본 변경이 이루어질 경우에 초래되는 정체성의 혼란이나 자와 성·본을 함께 하고 있는 친부나 형제자매 등과의 유대 관계의 단절 및 부양의 중단 등으로 인하여 겪게 되는 불이익의 정도를 심리한 다음, 자의 입장에서 위 두 가지 불이익의 정도를 비교 형량하여 자의 행복과 이익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판단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09. 12. 11. 2009스23결정). 자의 성본 변경이 이루어지지 아니할 때와 성본 변경이 이루어졌을 때 자가 겪게 되는 불이익의 정도를 비교 형량하여 자의 행복과 이익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대법원 2009. 12. 11. 2009스23결정)  하지만 사실상 ‘자의 복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부가 동의하는지’ 여부로 그 필요성을 판단하고 있는 것 아닌지 묻고 싶다.


정부는 부성 우선주의를 폐기하라는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권고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유로 폐기를 유보해 왔다. 그러나 엄마 성 빛내기 프로젝트 참여자들의 성본 변경 청구 과정에서도 그러했듯 부성 우선주의 원칙이 폐기되지 않으면 부성 우선주의에 입각한 절차 및 관행만 반복·유지된다. 부족한 것은 사회적 합의가 아니라, 성 평등을 위한 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