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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더 나은 기부환경, 여기서부터 시작_황인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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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단법인 동천1 작성일23-03-03 14:39 조회67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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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부관련 제도는 정신없이 꼬여있다. 그래도 법원은 중심을 잡았다.

재단법인 동천 황인형  변호사

(이 글은 alookso에 게재된 글입니다)

더 나은 기부환경, 여기서부터 시작 by 황인형 - 얼룩소 alookso 



튀르키예-시리아 지진으로 최소 4만 7천여 명 이상이 사망하고, 11만 5천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먼 곳의 사건은 가까운 이웃의 사건만큼 절실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구태여 시간을 내 타인의 몸과 마음의 고통을 상상하며, 기꺼이 나눠 지려 한다. 인류애는 적극적 사고(思考)와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특히 귀하다. 재해 성금과 구호물품 기부는 그런 의식적 노력에서 비롯된다. 일부 이기적 동기가 개입할 수는 있지만, 피해 회복과 치유에 기여하는 건 같다. 어떤 마음에서든 기부는 분명히 선(善)하다. 
분명한 악(惡)은 기부를 가장해 돈을 착복하는 이들이다. 최근 AI가 생성한 것으로 보이는, ‘손가락이 여섯 개 달린’ 그리스 구조대원이 튀르키예 국적의 아동을 품에 안은 그림이 화제가 됐다. 성금 모금을 명목으로 해외에서 횡행한다는 사기의 예시다. 이를 보고 기부를 단념하거나 망설이게 된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많은 기부자들, 잠재적 기부자들은 궁금해졌을 것이다. 한국에는 이러한 사기를 막기 위한 제도가 있기나 할까.

 

있다. 오히려 외국에 비해 규제가 강한 편이다. 행정당국의 통제 의욕은 매우 높다. 하지만 체계가 정리되지 않아 비효율적이다. 비슷한 사항을 두 개의 제도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중복해서, 칸막이 행정으로 규율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혼동이 발생한다. 비슷한 개념을 서로 다른 의미로 쓰고, 같은 사실에 대해서 범위와 내용이 다른 회계처리, 보고, 공시를 요구하여 종사자는 물론 전문가도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의도치 않은 실수와 법령 위반을 피하기 어렵다. 다행히 최근 각 제도의 역할을 더 분명히 하고, 향후의 체계정비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졌다. 판결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제도에 대해서 간략하게라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제도인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통상 ‘기부금품법’이라 줄여 부른다)은 1천만 원 이상의 기부금품을 모집하기 전에 행정안전부나 지방자치단체에 미리 등록하여 모집과 사용 결과를 보고, 공시하게 한다. 부동산이나 주식과 같은 재산을 모집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인지, ‘금전’과 ‘물품’ 모집에만 적용된다. 기부를 강요해서도, 공개되지 않은 곳에서 모집해서도 안 된다. 모집된 금품의 15% 이하의 금액만 ‘모집비용’, 예를 들어 모금행사, 온라인 펀딩 비용, 은행업무나 회계 비용 등 홍보, 기부금 접수・관리에 쓸 수 있고 나머지는 등록된 모집목적에 써야 한다. 의무 위반은 형사처벌로 강력하게 제재한다. 종합하면, 제도의 초점은 사기적 모집을 미리 억제하는 데 있다. 대법원은 “금품의 모집이 무분별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기대되거나 또는 적정한 사용이 담보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면 처벌하지 않는다고 해석해왔다는 데서 그 취지가 더 분명해진다(2013도8118).
이러한 방식의 규제는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미국에서는 비슷한 제도를 위헌이라 판단하기도 했다). ‘사전’ 규제를 중시하는 이 법률의 바탕에는 기부 모집이 사기일지 모른다고 의심부터 하는 부정적 시각이 내재되어 있고 한국전쟁 직후 법률이 제정된 이래 약 70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 있다. 저신뢰 사회의 씁쓸한 단면이다.
 
두 번째 제도는 금전, 물품, 부동산, 주식 등 모든 종류를 통틀어 무상으로 받은(법률적으로는 ‘증여’라고 한다) 재산의 사용내역을 국세청에 보고, 공시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기부재산이 공익에 쓰인다는 것을 조건으로, 증여세를 면제해준다. 기부자에게는 기부금영수증을 발급하고 소득공제 혜택을 준다. 그래서 이 제도는 ‘공익법인’이나 ‘공익단체’로 지정받은 곳에만 적용된다. 
국세청은 공익법인 등이 기부 받은 재산의 80% 이상을 공익사업에 사용하는지, 전용계좌로 수입・지출을 관리하는지, 법인 특수관계인에게 이득을 환원시키지는 않는지, 주식 기부로 세금을 탈루하면서 우회상속을 하지는 않는지 등 다양한 사항을 정기 감독한다. 기부금품법보다 살펴보는 재산의 범위가 훨씬 넓고, 자체 데이터베이스에서 다양하고 내밀한 재정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 더욱 종합적 관리가 가능하다. 어떤 지출이 공익사업 비용인지, 기타 운영비나 수익사업 비용인지에 관해서도 회계기준을 상세히 정한다. 일정 규모 이상 단체는 외부 전문가 세무확인, 외부 회계감사, 재무제표 등 공시를 통해 엄격히 감시한다. 의무위반이 확인되면 국세청은 혜택을 박탈한다. 면제했던 증여세를 도로 추징하거나 가산세를 매기고, 공익법인 지정을 취소시킨 후 다시 지정받기 어렵게 한다.
 
정리하자면, 기부금품법은 금전과 물품의 무분별한 모집과 임의 사용을 처벌하는 것으로, 세법은 기부재산이 공익활동에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감시하고 선별해 혜택을 주는 것으로 주된 역할이 나뉜다. 세법을 빼놓고 단순히 기부금품법의 내용만을 본다면, 다양한 재산이 누락되어 있고 기부금 사용을 검증할 세부기준이 하나도 없는 반쪽짜리 법률로 보일 수밖에 없다. 최근 대법원에서 기부금품법위반 무죄 판결이 내려진 형사사건(2021도16765)도 전체 체계에 대한 이해 없이 기부금품법의 적용범위를 무작정 넓히려는 시도에서 시작되었다.
 
지금까지의 행정해석에 따르면 소속원으로부터 받은 정기회비나 후원금은 기부금품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 A단체는 전국에 수십만 명의 후원회원을 가지고 있었고, 정부의 해석에 따라 이들의 정기후원금은 모집등록을 하지 않아왔다. 국내에서 모금을 통해 운영되는 대부분의 단체가 같은 방식으로 정기후원금은 모집등록하지 않고, 세법이 정하는 방법에 따라 사용해왔다. 반면 이 사건의 수사기관과 1・2심 법원은 기존의 해석을 전면적으로 뒤집었다. 후원회비를 포함한 모든 기부금은 모집등록 대상이고, 대부분 수혜자에게 그대로 전달되어야할 뿐이며, 인건비를 포함한 그 외의 모든 비용은 모집비용이므로 기부금의 15% 이내로만 사용할 수 있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그간의 확고한 행정해석에 따라 A단체와 같은 방식으로 기부금품을 관리해 온 전국의 비영리법인과 단체가 전부 처벌대상이 될 위기에 있었다. 인건비를 포함해서 재정의 15% 이내 기준을 지킬 수 있는 단체는 사실상 없다고 보아야 한다. 세법은 공익활동 종사자의 인건비도 목적사업에 쓴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판결에 따르면 종사자는 공익활동을 했더라도 급여를 지급받을 수 없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교육, 연구, 의료, 복지, 현장구호처럼 사람의 활동이 곧 공익활동인 사업은 사실상 전면 불가능하게 될 것으로 보였다. 어떠한 법적・도덕적 흠결 없이 운영되어온 단체라 하더라도 이 판결이 제시한 기준을 준수할 방법은 없을 것이라 예상됐다. 무분별한 모집과 임의사용 방지에 초점을 두었을 뿐, 기부금 사용의 공익성을 구체적으로 평가할 방법이 없는 법률을 무리하게 확장 적용한 탓에 불합리한 결과에 이르렀다.
 
1년여의 소송전 끝에, 다행히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A단체에 무죄를 선고했다. 법인의 정관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회원 자격을 얻은 사람들로부터 금품을 모았고, 법인이 기부금품 모집등록과 모집과정에서 법률을 위반한 사정이나, 세법상 다양하고 엄격한 규제를 위반한 사정도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회비 등 납부가 무분별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기대되고, 적정한 사용 또한 담보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세법의 기준에 발맞추어, 인건비는 공익 목적 수행에 수반하는 비용이라고 인정했다. 이미 세법이 기부재산의 사용을 폭넓고 상세하게 통제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이해하고, 각 법률이 달성하고자 하는 입법목적을 면밀히 고려하여 내려진 합리적인 판결이다. 
 
정말로 기부금품법에 의한 규제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은 손가락이 여섯 개인 구조대원 사례처럼 모집자 실체가 불분명하거나, 목적을 알 수 없거나, 모집 과정이 불투명하거나, 강압적이거나, 금품의 사용내역을 알 방법이 없는 경우가 아닐까. 그야말로 무분별한 모집, 기부금 유용이 우려되는 경우다. 국세청이 공익법인으로 관리하고 정부 유권해석에 따라 위법사항 지적 없이 운영되어온 단체가 부적정한 기부금 사용 우려가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수천만 원의 소송비용을 써가며 4년 이상을 검사실과 법정에서 마음 졸여야 했다는 사실이 ‘웃프다.’
 
행정안전부와 지자체가 기부금품법의 적용범위를 모든 기부재산으로 넓히고 그 사용내역을 상세히 들여다보며 공시의무까지 부과하겠다고 나선다 하더라도, 이는 세법과 국세청이 이미 다루고 있는 사항을 중첩해서, 불완전하고 미숙하게 통제할 뿐이다. 그럴수록 현장의 부담과 혼란은 가중되고, 기부자 입장에서는 서로 다른 공시정보 중 어느 것을 신뢰해야 할지 오히려 알기 어려워진다. 
기부투명성은 매우 중요한 가치이지만 제도가 유기적으로 작동할 때 달성될 수 있는 것이지 양방향 통제 강화가 능사가 아니다. 규제가 중첩되는 부분은 과감히 정리하고 각자의 규제목적을 더 효율적으로 달성하도록 발전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공익법인등 지정을 받지 않은 개인이나 단체로서 실질을 갖추지 못한 소규모 조직에 대해서는 기부금품법만이 적용된다. 유튜브, SNS 모금, ‘경태아빠’, ‘어금니아빠’ 사건을 떠올려보라. 이러한 영역에서야말로 기부금 사기를 우려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번에는 대법원이 현명한 판결을 통해 대신 교통정리를 해주었지만, 향후에는 당사자의 피만 말리는 소모적 소송에 이르기 전에 정부 부처 간 통합적 접근, 제도 일원화를 위한 입법적 노력으로 체계를 정비할 수 있기를.
 
* 본문의 2021도16765 사건은 법무법인(유한) 태평양과 재단법인 동천의 변호사들이 함께 프로보노로 진행한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