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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프로보노 인터뷰] 태평양 강용현 고문변호사님
작성자 재단법인 동천 작성일 2017-04-27 조회수 87


“공익활동, 지휘만 하면 재미없어서 안 해요. 직접 해야 재밌지!”

 

강용현 변호사님은2001년 태평양에 오신 후 공익활동 시스템 구축과 발전에 큰 기여를 해오셨으며, 아직도 현장을 누비시며 사회적약자들의 무료변론에 힘쓰고 계십니다. 25일에는 로펌의 공익활동 활성화와 법률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 등을 인정받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으셨습니다. 강용현 변호사님의 공익 이야기를 전합니다. 



- 인터뷰 대상자: 강용현 고문변호사

- 소속: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5그룹 건설팀






태평양은 변호사들의 공익활동 시간을 근무 시간으로 인정하고, 공익활동위원회와 공익재단 동천을 운영하는 등 프로보노활동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태평양이 이렇게 공익 쪽에 큰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변호사법 1조 1항이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입니다. 변호사는 인권 옹호, 사회정의 실현이 기본 사명인 겁니다. 그리고 태평양이 여러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대형로펌이기에,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측면도 있겠죠. 하지만 무엇보다 기본적으로, 이타성이 인간의 본성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저는 성선설을 믿어요. 또 최근에 사회생물학적으로도 호모사피엔스가 이타성이 있는 종족이기 때문에, 이타성이 없는 다른 종족과 달리 자연선택을 받아 자연계를 정복할 수 있었다는 이론이 있잖아요. 결론은,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인간 본성에 맞다는 거에요. 남을 돕거나 선행을 하면 기분이 좋잖아요? 



다른 로펌들 보다 유독 태평양이 공익활동에 큰 관심을 쏟는 이유는 창립 단계에서부터 김인섭 명예대표님이 “변호사는 이익집단이 되어서는 안 되고 사회적 가치를 수호하고 실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철학을 세우셨기 때문이에요. 태평양의 3대 경영가치가 인재경영, 가치경영, 선진제도경영인데, 공익활동이 바로 가치경영에 해당합니다. 회사의 DNA 중 하나가 공익활동인 것이죠. 제가 태평양에 들어 온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공익활동만 전담하는 동천이 설립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또, 태평양-동천의 공익분야는 난민, 이주민, 여성청소년, 장애인, 북한, 사회적경제, 복지로 세분화돼 있는데요, 이렇게 공익 활동 내에서도 전문화를 시킨 이유 또는 필요성이 무엇인가요?



2001년 태평양에 들어와 유욱 변호사를 비롯해 공익활동에 뜻이 있는 변호사들과 힘을 합쳐 공익활동위원회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우선 각자 일이 너무 바쁘다 보니 공익활동은 어쩌다 누가 해달라고 하면 해주는 정도인 거에요.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공익활동에도 효율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효율적 이타주의”라는 말처럼요. 효율성, 능동성, 체계성, 지속성, 전문성을 위해선 공익활동만 하루 종일 생각하는 변호사, 즉 공익전담 변호사들이 있어야겠다고 생각 했죠. 그래서 동천이 만들어진 거에요. 동천의 공익전담변호사들은 공익활동의 체계를 잡고, 적극적으로 수요를 발굴하며, 시민단체들과 로펌의 연결자 역할을 합니다. 덕분에 다른 변호사들이 효율적으로 공익활동을 할 수 있는 거죠. 공익활동 내에서도 또 세부 전문을 둔 이유는, 각자의 세부 전공을 갖게 되면 노하우와 자료가 쌓여 효율적이고 전문적으로 공익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러한 로펌의 공익활동 시스템은 우리나라에서는 태평양이 처음 시도한 것이고, 세계적으로도 드문 경우일 겁니다. ‘프로보노 인스티튜트’(PBI, 대형로펌변호사들의 프로보노활동을 활성화하는 미국의 비영리단체 )’도 심슨대처바틀렛(Simpson Thatcher & Bartlett, 미국의 대형로펌)과의 세미나에서 태평양-동천의 제도가 인상적이라고 평가하더라구요. 지금은 국내의 다른 메이저 로펌들도 이러한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죠.



태평양과 같은 대형로펌의 공익활동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로펌은 사회적 책임이 있다고 봐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라고 하잖아요. 그것처럼 로펌의 사회적책임인 LSR(LawFirm Social Responsibility) 이 있는 거죠. 로펌에는 변호사뿐만 아니라 회계사, 변리사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모여 있어요. 그들의 전문성을 살려 다양한 공익활동을 할 수 있는 거죠. 500명 이상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공익활동을 하면, 각자 조금씩만 시간을 내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어요. 이러한 프로보노활동이 로펌의 사회적 책임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 간의 공익활동 사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제가 태평양에서 한 첫 무료 변론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2002년쯤이었어요, 일명 ‘켈로부대원 사건’입니다. 한국전쟁 당시에 정식 군번을 받은 군인은 아니지만 군대를 도와 유격전을 같이 했던 사람들을 ‘켈로부대원’이라고 해요. 70세가 넘은 한 노인 분이 켈로부대원이었는데 전투 중에 폭탄이 터져 한쪽 귀의 청력은 완전히 잃고, 다른 한 쪽 귀의 청력만 조금 남은 상태로 평생을 사셨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식 군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예우를 받지 못하고 사시다가, 인생의 명예로운 마지막을 준비하시며 국가유공자 신청을 하셨지만 거부처분이 났어요. 이러한 사정을 알게 돼 저와 한 주니어변호사가 함께 그 분 무료 변론을 맡고 거부처분 취소소송을 냈죠. 자료확보를 위해 의뢰인과 상담을 하던 중 대구육군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병원에 의뢰해 그 당시 진료기록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기록들이 마이크로필름으로 보관돼 있어 읽을 수가 없었어요. 관리시스템이 컴퓨터로 바뀌면서 병원에서 마이크로필름 리더를 다 없애버린 거에요. 다행히 의뢰인 아들 분께서 컴퓨터를 잘 다루셔서 그 마이크로필름 자료들을 다섯 배 확대해 읽을 수 있게 만들었죠. 어떤 전투에서 어떻게 다쳐서 어떤 수술을 하셨는지 다 나왔습니다. 그 자료를 바탕으로 승소했죠. 의뢰인분이 너무 기뻐하셨어요. 함께 식사를 하러 갔는데 봉투 하나를 건네시더라구요. 자기가 자서전을 썼는데 인세를 받았다며 그 중에 일부를 드린다면서요. 우리가 절대 못 받는다고 했는데, 이 분이 하도 화를 내서 받았어요. 20만원인가 그랬는데, 우리 주니어변호사 이름으로 유니세프에 기부 했어요. “무료변론이니까 우리가 받을 순 없고 대신 유니세프에 기부를 했다.”, 그 분께는 그렇게 알려드렸어요.



공익 활동에 참여하는 태평양 구성원들에게는 어떤 긍정적인 영향이 있나요?



공익 활동을 통해 인격적으로 더욱 성숙할 수 있어요. 사실 요즘 좋은 가정에서 좋은 교육 받고, 공부도 제일 잘하고, 소위 ‘엄친아(엄마친구 아들)’로 자란 분들이 많잖아요? 그런 분들이 어려움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직접적으로 알기는 어렵잖아요. 젊은 변호사님들이 공익활동을 통해 어려운 환경에 있는 분들을 만나고 상담하며 사회를 보는 눈도 넓어지고, 인격적으로 더욱 성숙하게 되는 것 같아요. 뿐만 아니라, 공익활동을 하면서 자기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되고, 공익활동을 지원하는 태평양에 대해서도 자랑스럽게 여기게 돼요. 또한, 공익활동은 대부분 같이하기 때문에 구성원 간에 소통이 활발해집니다. 태평양은 구성원이 많아 소통이 쉽지 않을 수 있는데, 공익활동을 함께하며 소통이 원활해져요.



태평양에 대한 외부의 평가도 좋아지죠. 그 덕분에 좋은 변호사들이 태평양을 선택해 들어오게 됩니다. 로스쿨 학생들이 태평양에 오고 싶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좋은 로펌, 공익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로펌이라 평가 받기 때문입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로스쿨 들어갈 때 대부분 공익활동에 대한 생각을 하고 들어가잖아요. 훌륭한 변호사들이 우리 태평양을 선택하게 되는, 그런 선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죠.



태평양-동천의 공익활동을 하시면서 제일 보람 있는 때는 언제인가요?



상담이나 자문 이런 활동도 있지만, 그래도 소송을 이겼을 때, 무료 변론을 크게 이겨서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 제일 보람을 느끼죠. 지금도 무료변론을 세 건 하고 있어요. 그 중 하나인 탈북민 ㅇㅇㅇ씨 사건으로 그저께 인천법원을 갔다 왔죠.



아직까지 직접 공익활동을 하시는 건가요?



그럼요. 지금도 하죠. 현재는 일반사건은 잘 하지 않기 때문에 공익활동 사건을 더 열심히 해요.  예전보다 지금은 시간이 많기 때문에 공익 활동을 더 열심히 할 수 있죠.






아직까지 직접 하시는지는 몰랐습니다. 지휘만 하시는 줄 알았어요.



그럼 재미가 없어서 안 해요. (웃음) 직접 해야 재밌지!



변호사님은 개인적으로 언제부터 공익이나 인권, 이런 영역들에 관심이 있으셨나요?



사실 어렸을 때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어요. 그러다 인권 실현, 정의 실현, 이러한 꿈을 품고 법대로 갔죠. 법대에 진학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마찬가지일 거에요. 졸업하면서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판사가 되어 20 여 년 동안 판사 일을 했어요. 기본적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직업이긴 하지만, 판사의 일은 어떻게 보면 소극적이에요. 주어지는 사건만 판단하는 거에요. 좀 더 적극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2001년에 판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를 시작했고, 바로 태평양으로 왔죠. 변호사를 하기로 마음 먹었을 때, 돈이 없어 변호사를 선임 못하는 사람들을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공익활동에 많이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하게 된 거죠.  





아직까지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우리나라 로펌과 변호사들의 공익활동 참여는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평가됩니다. 바라시는 우리나라 로펌과 변호사들의 공익활동 미래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합니다. 



변호사들이 다들 마음은 있어요. 다만 어디서, 무엇을 해야 될 지 모르죠. 우선 모든 변호사가 자기 고유의 전공 외에 공익 영역에서도 어느 한 가지 분야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공익영역 내에서도 세부 전공을 갖는 거죠. 



로펌의 경우에는, 공익활동 전담 변호사를 두는 것이 바람직해요. 그러나 전담 변호사가 있다고 다른 변호사들은 공익 활동을 안 해버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전담 변호사는 공익활동을 잘 “coordinate(조정)”해서 다른 변호사들과 함께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있는 것이죠.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잖아요. 여기서는 변호사들의 각자 시간이 구슬인 거에요. 그것을 꿰는 사람이 전담 변호사인 거고요. 



마지막으로, 현업에서 은퇴한 변호사들의 공익 활동이 활발해지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공익활동은 어떻게, 어디서 할 수 있느냐?’, 이걸 변호사들이 잘 모르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만든 것이 NPO법센터에요. 변호사들에게 공익 활동과 관련한 교육을 하고, 도움이 필요한 NPO기관을 연결 시켜주는 역할을 하죠. 은퇴 후 남는 시간에 공익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입니다. 이것이 앞으로 바람직한 모습이라 생각해요. 



앞으로 최종 목표는 무엇인지요. 공익활동과 관련한 목표, 그리고 변호사님의 개인적인 목표도 궁금합니다. 



공익활동 쪽에서는, 우리 NPO법센터가 이제 시작했는데 성공적으로 잘되길 바랍니다. 저도 NPO법센터의 한 변호사로서 교육을 받을 거에요. 은퇴한 변호사들이 공익 활동을 하고 싶어도,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라 못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은퇴 변호사들의 시간을 모으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되겠어요. 우리 NPO법센터가 은퇴한 변호사들의 공익활동 플랫폼 역할을 잘 할 수 있길 바랍니다.   



개인적인 목표는 뭐 특별한 게 있나? (웃음) 사실 내가 이태리어를 배우려고 하는데 아직 못 배우고 있어요. 제가 예술에 관심이 많아서, 오페라를 잘 이해하기 위해 배우고 싶어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