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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과 역삼동 사이에 믿음과 나눔의 무지개 다리를 만드신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김성중 고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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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단법인 동천 작성일17-07-24 00:00 조회4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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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중 고문님은 30여 년간 다양한 노동행정 경험을 쌓으면서 ‘일’과 ‘일하는 사람’의 문제를 다뤄오셨습니다. 2008년 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을 퇴임하신 후 그 해 9월부터 태평양의 고문으로서 노동 분야 자문과 공익활동 지원을 해오셨으며, 전북대학교 석좌교수 및 재단법인 동천과 국내최대규모의 이주민지원 NGO인 지구촌사랑나눔의 고문으로도 활동하셨습니다. 고문님은 지난 6월 말 태평양에서 은퇴를 하셨는데요. 그 동안 태평양과 동천의 공익활동에 큰 기여를 해주신 고문님의 나눔 & 공익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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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노사정 위원회 위원장을 퇴임하신 후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힘쓰는 봉사자로활동하고 계신데요, 이렇게 노동자, 그리고 또 특별히 외국인노동자의 인권과 복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저는 노사정 위원장으로 일하기 전 노동부에서 오랫동안 공직생활을 했습니다. 노동업무는 일과 일하는 사람에 대한 업무라고 할 수 있지요. 일하는 사람이 제대로 대우 받고 그들이 이 사회에서 권익을 침해 당하지 않도록 임금체불이나 산재, 부당해고의 문제 등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 노동행정입니다. 우리 옛말에서 ‘일하지 않는 자’는 소위 ‘불한당’이라고 일컬어졌습니다. ‘일하지 않는 자’를 안 좋게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담긴 말이죠. 그러나 현실에서는 오히려 ‘노동자’라고 불리는 사람에 대한 편견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하는 사람’이 ‘노동자’이자 ‘근로자’인데 자신의 아버지를 ‘노동자’라 소개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저는 노동부에서 일하며 이 사회의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래도록 가져왔습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제가 노동부에서 일할 당시 고용허가제 입법을 했었는데, 그 과정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심각한 차별대우를 받으며 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구로동에 있는 ‘지구촌사랑나눔’에서 일하게 된 것은 고용허가제 입법 당시 지구촌사랑나눔의 김해성 대표님께서 많이 도와주신 인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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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외국인노동자를 위해 오랜 기간 동안 법률상담 및 봉사를 해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지요?
구로동에 있는 ‘지구촌사랑나눔’에서 일하면서 가슴이 뭉클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예전에 ‘지구촌사랑나눔’ 건물 지하에 중국동포를 포함한 이주여성분들이 묵는 숙소가 있었습니다. 사실 그 층은 식당을 위한 용도로도 사용하고 있어, 앞쪽은 식당으로 쓰이고 식당 뒤편은 칸막이로 처리해서 주로 연세 많으신 할머니들께서 주무시는 공간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여름에 그곳을 방문해보니 음식 냄새를 비롯한 악취가 너무 심해 도저히 사람이 머물 수 없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살 수 없는 곳에 남을 재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건물 4층에 있던 병실, 입원실 등을 없애고 ‘쉼터’라는 이름의 숙소를 만들었습니다. 반 지하에서 4층으로 올라오고 바닥을 깔고 커튼을 달았을 뿐인데, 그곳에 머무시는 할머니께서 제 손을 잡으시며 ‘지옥에서 천당으로 올라온 기분’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 분의 그 절실한 표현을 들으며 저 스스로도 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공직에서의 행정경험을 토대로 NGO의 계획적이고 짜임새 있는 운영을 돕기 위해 노력했는데, 숙소는 지금도 깨끗하게 잘 사용되고 있습니다. 보람을 느끼게 했던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이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입니다. 

공직자로 오래 일하셨고, 퇴임 후엔 이주노동자의 삶을 직접 보고 들으시며 현장을 누비고 계신데 현장에서 활동하시며 새롭게 느끼는 바가 있다면 어떤 것인지요. (공직자로 일하셨을 때와 비교하여) 또한, 행정과 현장 사이에 간극을 느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공직자로 일하는 경우와 현장에서 일하는 경우의 입장 차이는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직자는 기본적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조직에 소속된 사람입니다. 따라서 그에 따른 기준을 세우고 관련 법규에 따라 일할 수밖에 없지요. NGO는 그런 기준과 법규보다는 인권, 사람들의 어려운 사정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일을 한다는 것에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현장에 있어보니 행정이 뒤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현장은 상황이 급변하는 경우가 많아서 법규나 대처방식 등이 현장을 앞서 나가기가 어렵다는 것을 느꼈죠. 그래서 공직자 후배들에게 현장과 행정 간의 간극을 좁히고 적절한 입법행위나 행정조치를 취하기 위해서는 현장 활동가들과 지속적으로 만나 소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외국인 노동자 및 다문화에 대한 우리사회의 거부감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범죄 등 사회문제를 일으킨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일자리를 빼앗아간다고 생각하는 경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 우리나라에서 파견했던 서독 광산 근로자, 간호사, 월남 파병 근로자들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지요. 사실 그보다 훨씬 전인 일제강점기에 우리 선조들이 만주, 블라디보스톡, 일본, 하와이, 미국 등에서 이주노동자로 살며 가족을 보살피고, 돈을 모아 독립운동에 기부를 했다는 증거와 기록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많은 선조들이 해외 이주노동자로 생활하시면서 생계유지를 하고 나라의 독립을 도운 것이지요. 현재에도 전 세계에 한국인이 없는 국가는 없다고 할 정도로 많은 우리 국민들이 해외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 또한 이주노동자입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부정적 태도는 누워서 제 얼굴에 침 뱉기가 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외국인 중 몇 몇이 일탈을 한다고 해서 외국인 전체를 나쁘게 보고 욕하고 거부하는 것은 편협한 시각일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시각을 바꿔 생각해서, 사업장에서 한국인들이 외국인을 차별하는 것은 어떠한가요.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이놈아, 이새끼, 저새끼,’ 등과 같은 욕입니다. 또한, 대부분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3D업종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것을 빼앗아가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틀린 것이죠. 
결론을 말하자면, 외국인 노동자를 포함한 외국인들을 잘 포용하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을 괄시하고 차별대우하고 폭행하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의 팬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퇴임 이후 9년 동안 모교에 장학금을 기부하거나 재단법인 동천에 자녀 결혼이나 혹은 축하하실 일이 있을 때 다양한 방법으로 기부를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삶 전반에서 나눔을 실천하는 계기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우리사회에서 조금이라도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사람 혹은 자립했다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출근을 할 때, 출근 버스와 지하철을 운행하는 사람, 그것을 정비하는 사람, 그것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일하는 사람 등 출근 하는 일 하나에도 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거대한 네트워크 속에서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고 있지요. 저는 이 사회에서 소위 말해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사회에 더 많은 빚을 지고 있고 더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갚아나가며 사는 것이 일종의 의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단지 세금을 내는 것만이 의무가 아니라요(웃음). 저 같은 경우는 이 사회의 거대한 네트워크 속에서 건강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고, 제가 하는 기부나 나눔은 그런 감사한 마음을 갚아나가는 것에 불과한 것이에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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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태평양 공익위원회 및 동천의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고, 프로보노 활동의 연결자 역할도 활발히 해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들을 하시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때는 언제셨나요? 
태평양으로 인해 구로동과 역삼동 사이에 믿음과 나눔의 무지개 다리가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 굉장히 기뻤어요. 개인적으로, 태평양의 수많은 시니어, 주니어 변호사들이 매주 월요일 직접 지구촌사랑나눔에 방문해서 법률상담을 하는 이런 모습들이 참 감동적입니다. 예전에 오용석 변호사님(당시 업무집행대표변호사)이 아무 말도 없이 혼자 지구촌사랑나눔에 방문하여 작은 상담부스에서 쪼그리고 앉아 상담하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었습니다. 태평양 업무집행대표변호사의 역할이 상당하여 많이 바쁘실텐데도 시간을 쪼개어 대표변호사가 직접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가서 저렇게 쪼그리고 앉아 상담을 하고 있다니… 그 모습을 보며 저는 이것이 태평양의 정체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태평양이라는 조직이 가치 집단을 지향하고, 사회정의 실현에 목적을 두는 구성원들이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바라시는 외국인노동자들의 인권 미래 또는 우리나라 공익 활동 미래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합니다.
기본적으로 국민들이 외국인 근로자들을 손님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적어도 그들을 멸시하거나 차별하거나 학대해서는 안되겠지요. 우리 선조들도 외국에서 갖은 차별과 학대를 받았는데, 그것을 악이 아닌 선으로 갚아준다라는 마음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한류열풍이 불고 있고 이런 때에 우리가 외국인 노동자, 이주민들을 어떻게 대하는 가에 따라 우리가 문화민족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미나 유럽 등지의 몇몇 국가들 중 잘 살다가 갑자기 어렵게 되는 나라들이 있었습니다. 이와 다르게 독일은 쓰라린 패전의 고통을 이겨내고 세계 민주주의를 이끌어 나가는 경제대국이 되었는데, 이는 그들이 문화와 사상의 체계를 잘 바꾸어 나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현재 한국이 선진국으로 올라서기 전 갈림길에 서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앞에 놓인 길 중 하나는 우리가 잘 산다고 외국인 노동자들을 머슴처럼 대하는 길, 다른 하나는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외국인 노동자들을 손님으로 대하는 길입니다. 저는 우리가 후자를 택한다면, 우리나라가 경제대국이자 문화적으로, 인권적으로 뛰어난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6월 말에 태평양을 떠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동안의 소회가 궁금합니다.
저는 9년에 가까운 태평양에서의 근무기간 동안 참 행복하고 보람이 있었습니다. 태평양의 많은 변호사들이 어려운 법률 시장 속에서 치열하게 일하며 많은 고생을 하고 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로펌 중 최초로 공익재단도 만들고 엄청난 기부도 하고 직접 현장에 나가 봉사활동도 하는 등 그런 것들이 모두 참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곳에서 제가 불쏘시개 역할을 하며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태평양이 앞으로도 선도적인 로펌으로써 공익활동을 계속 발전시키고 견인하는 역할을 하면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저는 이제 만으로 65세가 되었습니다. 제 큰 딸이 미국에 살고 있고 제 손자 녀석이 이제 7살이 되어서 8월에 초등학교에 입학합니다. 그간 손자와 일 년에 한번 정도, 잠깐 만난 것이 전부라 자칫 잘못하면 이 손주녀석이 할아버지도 잘 모르는 미국 아이가 될 상황이에요…(웃음) 미국에 가서 아이와 시간을 보내며 할아버지 노릇을 해보려 합니다. 
미국에 몇 달 다녀오고 나서는 “지구촌사랑나눔”에서 자원봉사자이자 후원자로서의 역할을 계속할 예정입니다. 저는 제 일생 동안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일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을 돕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든 할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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