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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양천아동학대사망사건 그 이후 - 정부 진상조사를 촉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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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단법인 동천2 작성일21-03-25 14:08 조회1,18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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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 입양아동 학대 사망사건에 언론과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것이 지난 202110월부터였으니, 이제 약 5개월여가 지났다.

 

그 사이 수원에서는 생후 29일 된 아이가 잠을 자지 않고 운다는 이유로, 아빠는 반지 낀 손으로 아이를 여러 차례 때려 숨지게 했다. 익산에서는 생후 2주 된 아이가 울고 분유를 토했다는 이유로, 부모가 돌아가며 아이를 집어 던지고, 뺨을 때려 목숨을 앗아갔다. 인천에서는 8세 여아가 부모에게 얼굴과 온 몸을 맞아 멍 투성이가 된, 앙상하게 마른 시신으로 발견됐다. 차가운 겨울, 탯줄도 떼지 못한 아이들이 사천의 한 아파트 산책로 낙엽더미 밑에, 일산의 한 빌라단지 건물들 사이에 던져져 생명을 잃었다.

한국 사회에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알리고, 제도 개선이 시급함을 부각시킨 사례들은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양천 사건에 이르기까지 학대에 노출된 아이들을 적시에 발견하고 보호하는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였고, 양천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도 그랬다. 국회에서 앞다투어 아동학대 예방 법안을 쏟아내고 있었던 그 기간 동안에도 아이들은 아무도 모르게 목숨을 잃어 갔다.

아동 학대사건 가해자가 친부 또는 친모인 경우는 전체 아동학대 사건의 70% 비율을 초과한다. 학대 발생 장소는 아동의 가정, 또는 학대행위자의 가정 내가 80% 비율을 넘는다. 아동들이 대부분 가해자에게 의존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가해자는 오랜 기간 학대 사실을 숨길 수 있다. 만일 아동이 출생신고도 되어 있지 않다면, 학교에도 다니지 않는 나이라면 은폐는 더욱 쉽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발견하고 아동학대라 판단한 사례를 토대로 만들어진 아동학대 주요통계나 언론보도에 잡히지 않는, 잊혀진 아이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이번엔 구미의 한 가정집 안에서 오랜 기간 방치되어 온 3세 아이의 시신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다. 양천 아동의 경우에 그랬듯이 아이의 생전 모습이 공개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따뜻하고 생기 넘치는 사진 속 아이의 얼굴을 통해, 그 아이가 미라가 될 때까지 방치해 두었다는 어른들의 잔혹함을, 무정함을 상상한다. 누가 아이의 친모인지가 화두가 되자, 갑자기 어른들의 막장 드라마보다 더한 인생이 포털 뉴스 1면을 장식한다.

사람들의 동정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아이의 얼굴을 공개하고, 부서진 몸을 보여주며, 부모의 인간 같지 않은 행적을 속속들이 밝히는 보도에 익숙해졌기 때문일지, 양천 사건과 구미 사건 사이에 있었던 여러 신생아와 아동의 사망 사례들은 기사화 되었음에도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지나간 일이 되었다.

 

아동학대 사망 사건들은 모두 학대의 발견이 너무 늦은 경우다. 이렇듯 너무 늦어버린 사건만도 매달 2건 정도씩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아직은 살릴 수 있는 시간이 남아있는 수많은 아이들이, 사회 곳곳의 어두운 구석에 숨겨져 있기도 한 것이다. 임지선 기자가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에서 손에 닿을 듯 또렷한 이미지로 표현하였듯이, 우리는 검은 문 안의 아이들을 찾아내어, 웅크린 채 구조를 기다리는 아이에게 손을 뻗어야 한다.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 발생하였다면, 왜 지금에서야 발견된 것인가, 어떻게 발견하고, 막을 수 있었는가 에 주목하여야 할 이유다. 학대행위자의 부도덕함을 규탄하고, 피해아동의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는 것은 사회 문제에 관해 여러 사람의 관심을 끈다는 점에서 긍정적 측면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자체로는 문제를 해결하고 예방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세상을 떠난 아이에 대한 예가 아니라는 씁쓸한 인상이 남는다.

이상의 이야기들은, 이미 오랜 기간 학대 받는 아동들을 위해 현장에서 분투해온 활동가들과 지원단체의 전문가들이 여러 차례 입을 모아 반복해온 이야기다. 매년 똑 같은 문제를 지적하지만 변하지 않는 현실의 밑바닥에, 누구에게도 도움을 구하지 못한 채 죽어간 아이들의 이름과, 이름조차 찾지 못한 아이들의 유해가 켜켜이 쌓여간다.

 

지금 진정 필요한 것은 국민 다수의 가볍고 일상적인 관심보다, 학대사건을 직접 다루고 판별하여 아동 최선의 이익을 고려한 조치를 취할 권한이 있는 현장 인원들의 깊고 치열한 고민, 그리고 이들의 활동을 보장하고 전문성을 함양시킬 수 있는 재원과 조직의 마련이다. 재원과 조직의 마련은, 오랜 시간 공들여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는 데서 시작하여야 한다. 기존 제도의 틀을 변경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을 수 있을 정도로 설득력 있는 원인 진단, 제도의 세부 사항을 효과적으로 마련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인 실태 파악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껏 아동학대 사망 사건에 관해 단 한 번도 정부 주도의 진상조사가 이루어진 적은 없었다. 아동학대 관련 정부 예산은 약 42억원으로, 2021년 복지부 세출예산 89조원 가량 중 0.005%의 비율을 차지하는 것에 불과하다(370억원 정도는 법무부 범죄피해자 보호기금과 기재부 복권기금에서 조달한다).

 

양천아동학대사망사건 등 진상조사 및 아동학대 근절대책 마련 등을 위한 특별법안이 202125일 김상희, 남인순 의원 등 139인 국회의원에 의해 제안되어, 2021219일 보건복지위원회에 상정되었고, 이후 제1법안심사소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다. 법안은 아동학대사망사건 진상조사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설치하여, 부처 별로 나뉘어진 업무의 칸막이를 넘어선 조사와 대책 마련이 가능하도록 한다. 이 조사위원회를 중심으로, 국가가 양천 사건뿐만 아니라 2018년부터 발생한 중대한 아동학대사망사건을 선정해 조사하고, 정부와 국회는 진상조사결과 보고 내용과 취지를 정책, 입법 등에 반영하도록 하는 것이 법안의 골자다.

 

양천아동학대사망사건 등 진상조사 및 아동학대 근절대책 마련 등을 위한 특별법안

(김상희의원 대표발의)

 

2장 아동학대사망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의 설치와 운영

 

3(위원회의 설치) 아동학대사망사건의 진상을 조사하여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대책을 제시하고, 그 대책이 법령ㆍ제도ㆍ정책ㆍ조직에 반영ㆍ이행되는 것을 점검함으로써 아동이 안전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대통령 소속으로 아동학대사망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이하 “위원회”라 한다)를 둔다.

 

4(위원회의 업무) 위원회는 다음 각 호의 업무를 수행한다.

1. 아동학대사망사건 조사대상의 선정

2. 아동학대사망사건의 발생원인ㆍ수습과정ㆍ후속조치에 대한 진상조사

3. 아동학대사망사건의 발생과 관련한 정부, 기관 및 관계자 대응의 적정성 및 법적 의무의 이행 여부 점검

4. 아동학대근절 및 아동보호와 관련한 법령ㆍ제도ㆍ정책ㆍ조직에 대한 개선방안 마련

5. 조사종료 후 아동학대사망사건 조사결과보고서 작성

6. 4호의 개선방안에 대한 국가기관등의 이행점검

7. 위원회의 활동기간 만료일 이후의 아동학대사망사건 조사를 위한 상설기구 설치 등 계획안 제시

8. 그 밖에 위원회의 업무수행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사항

 

이 법안의 발의로, 아동학대 사망 사건의 방지, 더 나아가 아동학대의 조기 발견과 근절을 향한 첫 걸음을 떼게 된 셈이다. 학대행위자를 엄벌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학대행위자는 미리 형량을 감안하여 학대할지 말지를 결정하지 않는다. 아동학대의 발견과 대처를 위해서는, 양천 사건을 통해 느꼈던 분노와 슬픔을 학대행위자의 엄벌을 촉구하는 데에만 모두 소진하여서는 안 된다. 위 법안이 무사히 시행되어 조사와 시스템 개편에까지 이르는 과정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지지로 전환하여야 할 때이다.

 

법안에서 관심을 끄는 대상은 첫째로 진상조사위원회의 구성이다. 현재 보건복지위원회에 상정된 법안은 위원장 1명과 상임위원 1명을 포함한 7명의 위원을 두도록 하고, 10년 이상 경력의 법조인, 교수, 수사정보수집 업무 종사자, 아동 단체/기관의 임직원, 8년 이상 경력의 외과, 소아청소년과 등에 종사한 의사 등을 자격요건으로 하고 있다. 아동보호 현장에 대한 이해, 조사 업무의 전문성, 법안 및 정책 개발의 측면을 고루 감안한 요건으로 보인다. 다만 실제 위원의 구성이 균형 있게 이루어지는지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한편 현재의 법안은 진상조사위원회가 조사개시 결정 후 2년 이내 활동을 완료하고, 조사 종료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국회와 대통령에게 보고하도록 되어 있다. 조사개시 후 결과보고서 작성까지 길게 잡아도 16개월여의 기간을 부여하고 있다. 법안이 모델로 삼고 있는 영국의 빅토리아 클림비 조사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에도 약 2년이 되지 않는 기간이 소요되었다는 데서 착안한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클림비 보고서는 허버트 레이밍 경(Lord Laming, 영국 귀족원 의원)이 총책임자로서 전문의, 간호사, 경찰관 등 평가위원 4명의 확인을 받아 영국 의회에 제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에 이르기까지 법률가, 의사, 학자 등 약 37명으로 구성된 사무국에서는 158명의 증인을 문답 조사하고, 왕실 고문 변호사(Queens Council)의 주도 하에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 20여명을 초청한 주제별 세미나(아동의 발견 및 관리시스템 등록 지원/보호 대상 아동 특정 필요사항 도출 서비스 제공 성과 모니터링)5회 개최해 100명이 넘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하였으며, 108항에 이르는 정책 권고사항을 도출해냈다.

 

클림비 보고서는 이렇듯, 빅토리아 클림비라는 단 한 명의 아동의 죽음에 오롯이 집중한다. 400페이지가 넘는 조사보고서의 서문 첫 문장에서 허버트 레이밍 경은 말한다. 이 보고는 빅토리아 클림비로 시작해서 끝이 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This Report begins and ends with Victoria Climbié. It is right that it should do so). 그만큼 하나의 사안에 대하여 깊고 면밀한 검토를 수행하고, 다시는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를 바꾸는 데 집중하였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번 양천아동학대사망사건 등 진상조사 및 아동학대 근절대책 마련 등을 위한 특별법안이 목표하는 바도 그와 같다. 비록 영국과는 달리 복수의 아동학대 사안에 대한 조사를 예정하고 있으나, 이는 그간 막을 수 있었던 여러 아이들의 죽음을 막지 못한 데 대한 반성적 고려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보건복지위원회의 법안 검토보고서에서 관련 정부부처는 대체로 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의견을 공통적으로 피력하고 있으나, 행정안전부는 사무기구는 부득이한 경우 최소한으로 설치할 것을 부가 의견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행정위원회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의 규정을 참조한 것으로서 원론적인 의견이지만, 법안의 의도대로 충분한 역량과 숫자의 사무국 인력이 확보되고, 다양한 전문가 의견을 청취하여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제도개선 방안을 확충할 수 있도록 하려면, 그만큼 많은 시민들이 아동학대의 문제와 법안의 시행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여야 할 것이다.

법안의 심사 현황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서 확인할 수 있다(https://likms.assembly.go.kr/bill/billDetail.do?billId=PRC_A2R1X0I1S2O9R0L9W5F4I0K7A9X5A8).

 

법안이 조속히 국회를 통과하여 철저한 진상조사가 개시되기를, 스러져간 아이들의 이야기가 앞으로 살아야 할 아이들의 생명을 지킬 유산이자 축복으로 가 닿기를 기원한다.

  

 

재단법인 동천 황인형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