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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공공주택에 대한 님비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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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단법인 동천1 작성일20-01-22 13:09 조회1,73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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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실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2020. 1. 21. 자 전북 참소리 게재)

 

 

Not In My Back Yard, 님비 현상은 환경오염이나 건강상 위해성 등으로 지역사회에 악영향을 미치는 시설에만 발생하는 줄 알았다.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을 위해 장애학생 부모님들이 무릎을 꿇는 사진과 부모들에게 쇼하지 말라고 소리치는 이들을 보면서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어떤 분이 탈북청소년 대안학교도 걱정이라는 말을 했을 때만 해도 에이 설마... 탈북청소년에 대한 인식은 다르겠지. 그리고 이번 사건으로 사람들이 배운 것이 있지 않을까?’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웬걸, 그분의 우려는 작년 말 현실이 되었다. 이전을 하려던 여명학교가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 위기에 놓였다. 여명학교 선생님은 대신 무릎 꿇어줄 부모도 없는 아이들을 위한 학교라며 청와대 국민청원에 호소했고​1), 해당 부지에 다른 편익시설을 원했던 지역 주민들은 왜 자신들을 지역이기주의로 폄하하냐며 항의했다.

 

몇 년 전부터 대학교 기숙사 건립에 대해 인근 주민들이 반대 시위를 한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보도됐다. 십여 년 전 서울로 대학을 진학한 후 학교 주변에 자취방을 알아보러 다니던 기억이 떠올랐다. 주거에 대한 권리에 대해 생각조차 해보지 못한 시절이었다. 처음 맛보는 자유로움을 대도시에서 만끽하느라 어차피 집에서 보내는 시간도 적은 터, 월세가 아깝다는 생각에 늘상 작고 저렴한 방으로 알아봤다. 뒤꿈치를 들면 머리가 닿을 정도로 천장이 낮고 같은 층 사람들과 화장실도 공유했던 방도 월 35만 원은 되었다. 누운 자리에서 사방의 벽을 만질 수 있는 고시원에 사는 친구들도 많았다. 청년 주거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논의가 다양하게 이뤄지는 요즘, 부족한 기숙사를 더 많이 확보하겠다는 학교측 노력에 대해 인근 하숙집 주인들, 임대업자들이 반대하는 것이 야속하긴 하지만 아주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청년들을 위한 공공주택(행복주택, 서울 역세권 2030 청년주택, 청년임대주택 등)도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사업이 많다고 한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청년 이웃들이 많아지면 오히려 동네에 활력이 넘치고 소위 힙한동네로 뜰 기회가 생기는 것 아닐까? 반대하는 근거를 들어봐도 터무니없다. 교통혼잡, 슬럼화, 범죄율 상승 등을 둘러대지만 근간에는 집값 하락에 대한 우려가 자리잡고 있다. 결국 인근 소유권자들은 부동산의 자산가치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토지이용이나 입지가 아니라는 이유로 청년공공주택을 반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택정책 연구자들은 이러한 우려가 기우이거나 허구에 가까운 것이라고 꼬집는다​2). 일부 공공주택이나 사회주택의 공급만으로 주변 집값이 떨어지지 않으며, 실제 사례에서는 오히려 주거환경이 좋아져서 집값이 오르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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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현안에 대한 주민들의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집단행동은 존중받아 마땅하고, 이 경우 정책결정권자가 공익과 사익을 비교형량하여 합리적으로 판단하면 된다. 이를 위해 공공임대주택과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사회주택 등의 경우 각 관련법규에서 공청회 또는 주민 의견청취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고, 건축허가 등의 직접적 당사자가 아닌 주민들도 민원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의 근거가 비합리적이고 혐오와 차별에 기반을 둔 막무가내식 반대인 경우, 민원의견을 수렴하는 제도 내에서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자연히 소멸되어야 한다. 만약 도를 지나쳐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모욕적 발언과 행동이 포함되어 있다면 이는 별도로 법적 규제를 받아야 한다. 즉 주민 등이 제출한 의견이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이를 반영하면 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반영하지 않더라도 의견청취의 형식적인 절차를 누락하지 않는 한 절차적으로 위법하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행정청이 주민들의 민원을 직접적인 불허가 사유로 하여 구청 등이 건축허가를 불허하는 경우, 이러한 거부처분은 위법하다는 판례가 축적되어 있다. 건축법 소정의 건축허가권자는 건축허가 신청이 건축법 등 관계법규에서 정하는 어떠한 제한에 배치되지 않는 이상 당연히 같은 법률상 소정의 건축허가를 하여야 하는데(대법원 1995. 6. 13. 선고 9456883 판결 외 다수), 건축법상 인근 토지나 주변 건축물의 이용현황에 비추어 현저히 부적합한 용도의 건축물을 건축하는 경우가 아님에도 건축허가신청을 불허할 사유가 되지 않는 인근 주민들의 민원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건축허가신청을 반려한 처분은 법령의 근거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 위법하다(대법원 2002. 7. 26 선고 20009762 판결). 러브호텔 건축허가 사안에서도 인근 주민의 정서에 부적합하다는 사유는 건축 불허가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였다(대법원 2000. 3. 14. 선고 984658 판결).

 

결국 별도의 불허가 사유가 없는 한 인근 주민의 막연한 우려, 정서 등으로 인한 민원으로 인한 건축허가 거부는 위법하다. 만약 행정청이 민원을 이유로 건축허가를 직접적으로 불허하지 않더라도 수차례 걸쳐 보완서류 제출을 요구하면서 허가를 미룬다면, 행정청을 상대로 건축허가 의무이행 심판 청구도 가능하며, 장기간 건축허가 여부를 결정하지 않는 것이 위법함을 확인받을 수 있는 건축허가불이행 부작위 위법확인소송 청구도 가능하다(서울행정법원 2011. 7. 15. 선고 2011구합8741 판결). 나아가 건축관련 법규에 위배되는 바가 전혀 없었음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집단 서명을 받아 구청에 부당한 내용의 민원을 제기하는 한편, 물리력으로 공사를 방해하여 신축건물의 공사가 지연된 경우 불법행위로 인해 건축주가 입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도 가능하다(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1999. 1. 22. 선고 97가합3605 판결).

 

사실 공정과 정의에 관한 모든 문제를 법으로 접근하기는 어려움이 있다. 법은 최소 조건만을 보장하고 그 이상을 규정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소송을 통해 절차를 강행하고 선례를 남길 수도 있으나 오랜 기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결국 법적인 해결보다는 기존의 공공주택에 대한 사회적 인식변화, 청년층의 주거에 대한 권리 강조, 문화적 성숙도를 갖출 것이 요구된다. 이를 촉구할 수 있는 법제도적 방안으로 공공주택사업 관련 규정에 청년의 주거권 및 공공의 의무 조항 명시, 그리고 의견수렴 절차의 제도적 보완을 고려해볼 수 있다.

 

주거에 대한 권리는 헌법 제35조 제3​3)이 근거가 되며, 주거기본법을 통해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가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부동산이 지니는 불가침적 재산권의 위상과 비교하여 사회적 기본권으로서의 주거권의 권리적 인식은 아직 미비하다. 재산권 행사는 헌법 제23조 제2항 재산권의 사회적 의무성 조항에 따라 사회적 연관성과 사회적 기능이 클수록 더 광범위한 제한이 허용되며, 헌법 제122조 국토의 효율적 이용 조항을 토대로 한 토지공개념은 일반재산권에 비해 토지에 관하여 높은 수준의 사회적 제약에 관한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기능한다. 주택 역시 토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특히 주택시장의 계층화가 심화되고 청년 주거문제의 해결이 절실한 오늘날, 공공주택사업 시행지 곳곳에서 벌어지는 장벽에 대한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 토지공개념의 관념을 주택에까지 확대한다면 공공주택사업으로 인해 재산권에 간접적 제약을 받는 집단에 대한 사회적 의무 또는 제한을 마련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 토지공개념은 기존 소유자의 재산 행사에 대한 제약의 의미가 강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와 지자체가 재정을 투입해서 적극적으로 부동산을 공급해야 하는 정책 근거로 기능하기도 한다. 따라서 토지공개념을 확대하여 적극적으로 주거 취약계층이 부동산으로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와 주거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의무, 공공주택 마련에 있어 사회공동체의 이익을 위하는 방향으로 법적 근거를 마련하여 사회적 타협의 과정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4)

 

그 외 주민들의 의견청취 과정 및 의견수렴에 있어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주민의 민원에 대해 공공이 나서서 객관적인 지표를 가지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공공주택의 공급이 지역 주택가격이나 임대료, 범죄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등 실증적인 연구를 통해 근거 없는 주장을 구체적으로 반박하여야 한다. 나아가 공공주택의 필요성과 장점에 관해서도 확인시켜 줄 수 있어야 한다. 적극적으로 주민들을 설득하는 노력을 선행하되, 그럼에도 갈등이 지속될 경우 공공이 적극적인 중재자가 되어 권위있는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다양한 절충안과 해결책을 찾고, 이를 통해 결정된 사항은 함부로 번복할 수 없도록 하는 등 공적 통제 장치를 법적으로 제도화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5)

 

 

 

1)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83937

2)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12302051005

3) 헌법 제35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4) 2020재단, 토지공개념의 헌법적 분석과 실현방안: 토지공개념에서 주거기본권으로, 연구용역보고서, 2018.10.

5)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40215.html#csidxf8d067a716d756a9380550a63c3c31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