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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 칼럼] 예술흥행비자(E-6)의 이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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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단법인 동천 작성일13-12-26 00:00 조회2,53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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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흥행비자를 갖고 입국한 이주(외국인) 여성들이 인신매매와 성매매 착취에 희생되고 있어 특별히 우려하고 있다.”(2011년 유엔 여서차별철폐위원회 최종견해)

한국은 강제적 성매매의 근원지이자 경유지, 목적지다. E-6 비자를 발급받아 입국한 일부 외국인 여성들이 강제적인 성매매의 표적이 되고 있다.”(2012년 미국 국무부의 인신매매 보고서)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일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정부가 발행하는 비자가 필요합니다. 비자 중에는 예술흥행비자(E-6 비자)라 하여 음악, 미술, 문학, 연예, 연주 등의 활동을 하려는 외국인에게 발급되는 종류가 있습니다. 그런데 E-6 비자의 발급 요건에는 한 가지 특이점이 존재합니다. 보건증 대신 ‘HIV 감염(에이즈) 테스트 음성확인서제출을 요구했었다는 점입니다.

    

에이즈 감염 여부를 E-6 비자 발급 외국인에게 요구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전문가들은 기지촌의 변화 과정에 그 실마리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1990년대 이후 주한미군이 감축되며 기지촌이 침체하자, 그 곳에서 일하던 성매매 여성의 수가 줄어듭니다. 그 여성들의 빈자리를 채울 대안이 필요했고, E-6 비자로 한국에 들어온 외국 여성들이 고용되기 시작합니다. 이는 1999년 정부가 외국인 공연에 대한 규제를 완해해 허가제에서 추천제로 변경하자 더욱 탄력을 받습니다. 실제로 E-6비자를 받은 외국인 여성의 수는 199086명에서 20113220명으로, 무려 37배나 급증했습니다



 

    

그런데 E-6 비자를 발급받은 이들의 상당수가 유흥접객원으로 일한다는 사실을 정부는 모르고 있었을까요. 다른 비자 신청절차와 차별화된 ‘HIV 감염 테스트 음성확인서요구는 이러한 의구심을 증가시킵니다. 더불어 E-6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 여성은 국내법상 유흥접객원이 받아야 하는 병원 검사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현재 정부는 논란 끝에 HIV 확인서를 E-6 비자 서류에서 제외한 상태입니다.

    

E-6 비자를 발급 받을 때, 외국인 여성은 자신이 성매매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를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은 성매매를 거부할 수 없게 됩니다. ‘인신매매를 위한 일종의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연예기획사를 통해 입국한 여성은 전적으로 연예기획사를 의지할 수 받게 없는 처지입니다. 이들 연예기획사의 목적은 애초부터 유흥업소 알선이었고, 여성들은 영문도 모른 채 업소에 끌려가게 됩니다. 의지할 것 없는 그녀들은 자신의 아픔을 호소할 곳도 모른 채 성매매를 강요당하게 됩니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외국인 여성 성매매 실태 및 제도개선 방안 연구보고서에는 외국인 여성의 비참한 현실이 잘 나와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외국인 여성에게 요구되는 점수제입니다. 외국인 전용 출입업소에서 일하는 여성은 손님에게 술을 팔아 점수를 채워야합니다. 술 한 잔당 1점이고, 한 달에 300점을 채워야 합니다. 점수를 채우지 못할 시에는 임금이 지급되지 않습니다. 매우 비현실적인 기준 탓에 외국인 여성의 상당수가 해당 점수를 채우지 못하게 되고 임금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합니다. 이때 업주는 한 번에 20점을 채울 수 있는 바파인(Bar Fine:성매매)을 제안합니다. 처음에는 성매매를 거부하지만 업주의 협박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그 의지를 포기하게 됩니다.

    

외국인 여성의 고통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업주의 성 착취에 못 견뎌 경찰에 고발하게 되면, 외국인 여성은 불법적 성매매를 했다고 자백하는 꼴이 되어 재판 이후 강제출국 당하게 됩니다. 반면 업주는 인신매매로 고발을 당하더라도 직접적인 증거자료를 요구하는 수사기관의 소극적인 태도로 대부분 불기소처분을 받거나, 성매매알선죄가 적용되더라도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피해자인 외국인 여성은 자신의 나라로 쫓겨 가고, 업주는 그 자리를 채워줄 새로운 외국인 여성을 물색합니다. 불법적인 성매매 강요가 끊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공익법률재단 공감의 소라미 변호사는 생계가 절박한 외국인 여성들은 가해자를 처벌하고 본국으로 돌아가기보다는 숨어서 노동을 하거나 부당한 현실에 순응하는 길을 택한다인신매매 악순환의 고리를 근절하려면 피해자에 대한 적극적인 보호 조처가 시급하다고 주장합니다. 미국과 캐나다의 경우 인신매매 피해를 입은 외국인 여성에게 체류 자격을 보장하고 일정기간 경과 후 영주권 신청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호하고 있습니다. 인권을 유린하는 인신매매를 근절하고, 상처 입은 피해자를 우선 생각하는 조처입니다.

    

중앙대 이나영 교수는 기지촌 :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자화상에서 기지촌의 역사를 일제시대의 공창제라는 정부주도의 성매매 시스템 위에 이식된 군사주의 문화, 해방과 전쟁을 통해 증폭된 가난, 미군의 한국 지배와 군사정권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현대사 그 자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현대사의 아픔이 미처 치유되고 반성되지도 못한 채, 세계화의 과정 속에서 이주노동자들에게 대물림되고 있습니다. 전쟁과 가난의 시대, 우리 사회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던 여성들에서 가난을 피해 한국으로 건너온 외국인 여성에게로 희생의 대상이 바뀌고 있습니다. 대상이 바뀌었을 뿐 비극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비극은 드러나야 하고 반성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이 다만 외국인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약하고 작은 사람들의 희생을 통해서만 지탱될 수 있는 희생 시스템에 대한 본질적인 비판이 함께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과거의 우리네 여성들에서 현재의 외국인 여성에게로, 그리고 미래의 다른 작고 약한 누군가에게로 이어질 비극의 연속을 중단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참고 : 한겨레 ‘E-6비자는 성매매 허가증?’ 12.11.3

       이나영, 기지촌 :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자화상, 황해문화 제50. 2006.3


인턴 8기 양성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