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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글로벌 컴팩트에 대한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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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단법인 동천1 작성일19-06-26 13:49 조회1,40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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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 이탁건 변호사

이주 글로벌 컴팩트(Global Compact on Migration)의 공식명은 “안전하고, 질서 있고 정규적인 이주를 위한 글로벌 컴팩트”(Global Compact for Safe, Orderly and Regular Migration)로서, 2016년 9월 유엔 선언(이른바 “뉴욕 선언”)을 시작으로 추진되어 2018년 12월에 채택된 국제 문서이다. 이주민과 난민의 이동이 21세기에 들어 지속적으로 증가하며, 이에 따라 이주 거버넌스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이 높아진 것이 추진 배경이다. 이주에 대한 포괄적인 국제규범의 도입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각국의 시민사회의 노력도 이주 글로벌 컴팩트의 도입에 기여하였다. 최종채택 과정에서 미국의 반대 등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결국 152개국이 채택에 찬성하여, 인류역사상 최초로 대다수의 국가가 채택한 이주에 대한 포괄적인 국제문서가 되었다.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 글로벌 컴팩트의 채택을 반대한 집권 여당 또는 반대세력이 적극적으로 개진한 주장은 이 문서가 난민과 이주민의 자유로운 이동을 허용하고 인권 보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개별 국가의 (이주민 유입를 차단하고 이주민의 권리를 제한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주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를테면 올해 3월 뉴질랜드 난민살해의 주범이 총기테러범은 탄창에 “이게 바로 너희의 이주 글로벌컴팩트다! (Here’s your Migration Compact!)”라고 써놓기도 하였다. 이에 대해 각국 정부는 대체로 “이주 글로벌 컴팩트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협력 체계’에 불과하다”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정부도 여러 경로로 이런 입장을 반복하는 것 외에는 이주 글로벌 컴팩트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이나 해설을 내놓고 있지 않고 공식 번역본도 제공하고 있지 않고 있다. 이주 글로벌 컴팩트에 대한 일부 세력의 적극적 반대를 우려하기 때문에 소극적이라는 추측까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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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글로벌 컴팩트는 전문에서 명시적으로 법적 구속력을 부인하고 있고, 달리 구체적인 권리의무를 부여하거나 국내 이행법을 요구하고 있지 않으므로, 그 자체로 법적 구속력이 없는 문서라는 점은 명백하다. 규정 체계를 보더라도, (1) 전문(Preamble) – (2) 비전과 원칙(Our vision and guiding principles) – (3) 목표와 공식적 약속(Objectives and Commitments)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2)와 (3)에서 총론적인 원칙과 ‘약속(commitment)’을 나열하고, 이를 구체화한 당사국의 권리의무 내지 정책 방향은 ‘목표 별 조치(action)’에 나열하고 있다. 그런데 목표 별로 나열된 조치에 대해서는, “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음의 조치로부터 택할 것이다(to realize this commitment, we will draw from the following actions)”라고 정하고 있어, 마치 제시된 조치들은 각 당사국이 취사선택이 가능한 정책 제안에 불과하여, 정치적 약속(political commitment)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문언상 해석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글로벌 컴팩트에서 규정된 약속(commitment)은 당연히 법적 구속력이 부인되고, 제시된 세부 조치(action)들은 각 당사국이 자발적으로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참조할 수 있는 제안에 불과하다는 해석이 타당한가? 이러한 해석은 컴팩트의 구체적인 규정 내용을 살펴보면 전면적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컴팩트는 전문에서 한국을 포함한 다수 국가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채택되었으며, 당사국들에 대한 법규성이 명백히 인정되는 다수의 인권 조약들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i] 세부 조치(action)들도 구체적인 정책 도입을 제안하는 내용부터 “국제인권법에 따른” 당사국의 일반적인 의무를 규정하는 내용까지 다양한 형태로 제시되어 있는데, 후자의 경우에도 당사국이 취사선택할 수 있는 정책 제안에 불과하다고 단순히 치부할 수는 없다. 최소한 인권조약 등 국제인권규범에 구체적으로 기반한 약속 및 조치는 그 범위 내에서는 법적 구속력이 인정될 수 있어야 한다. 이 때 글로벌컴팩트 상의 ‘세부 조치’ 및 ‘약속’은 국제인권규범의 구체적인 해석 준거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약속 및 조치의 모호한 언어로 인해 국제인권규범의 규범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이민과 관련된 의제들을 포괄적으로 규율하는 국제규범이 부재하므로, 이미 합의된 인권기준과 원칙을 처음으로 대다수의 국가가 동의하는 형태의 프레임워크에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후 규범력 있는 협약 또는 관행으로 진보할 수 있다는 기대도 존재한다.[ii] 이주민 당사자들의 권리 중심(rights-based)으로 서술되어 있는 글로벌 컴팩트가, 이주인권에 대한 국제규범의 공백을 채울 수 있는 연성법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대이다. 특히 현존하는 이주민 인권 관련 조약인 이주노동자권리협약의 가입률이 계속적으로 낮은 상황에서, 연성법 문서의 역할이 커질 수 있다.

앞에서 서술한 글로벌컴팩트에 대한 기대와 컴팩트의 잠재력과는 무관하게, 현재로서 컴팩트 이행을 강제하거나 미이행을 제재할 심사절차나 기타 국내 사법절차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컴팩트의 영향력은 이행에 대한 당사국들의 의지에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다. 결국 ‘해석과 적용의 싸움’의 문제이다. 글로벌 컴팩트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이에 기반하여 당사국의 이행 미진을 추궁할 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i] 자유권규약, 사회권규약, 인종차별철폐협약, 여성권리협약, 고문방지협약, 아동권리협약, 이주노동자권리협약, 장애인권리협약 등 주요 인권조약 외에도, 인신매매, 특히 여성과 아동의 인신매매 방지, 억제 및 처벌을 위한 의정서, 국제연합 초국가적 조직범죄 방지 협약을 보충하는 육상, 해상 및 항공을 통한 이주자의 불법이민 방지를 위한 의정서, 노예협약 등

[ii] UN Doc. A/71/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