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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 칼럼] 진일보한 난민법 개정을 희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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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단법인 동천1 작성일18-09-13 20:20 조회1,50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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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일보한 난민법 개정을 희망하며

  

이른바 제주도 예멘 난민 사태가 전사회적인 논란으로 비화된 올해   이후 국회에서는 짧은 시간 내에 난민법 개정안이 우후죽순처럼 발의되었다. 발의된 법안들의 범주를 크게 나누어 보면, (1) 난민신청 장소를 제한하거나, 입국 형태에 따라 난민신청 자격을 박탈하는 등 난민신청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법안 (2) 거짓서류의 제출 또는 거짓으로 진술 또는 사실을 은폐한 경우 난민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 (3) 난민신청자의 거주 지역을 제한하는 내용의 법안 (4) 난민 불인정 사유를 확대하는 내용의 법안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러한 법안들은 대체로 충분한 숙의 없이 발화된 부정적 여론을 일면적으로 반영하고 있으며, 비현실적이거나 국제법상 확립된 기준과 동떨어진 난민신청 제도 개정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먼저 재외공관으로 난민신청 장소를 제한하는 법안부터 살펴보도록 한다. 이러한 법규정은 난민협약의 규정 및 취지에 배치되며, 실제로 난민신청자들이 박해를 받는 국적국을 탈출하여 난민지위 인정을 신청하는 현실에 부합하지도 않는다. 난민협약은 “인종, 종교, 국적 또는 특정 사회 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 등을 난민으로 정의하고 있으므로, 국적국을 탈출하는 등 ‘국적국 밖에 있는 자’를 난민의 요건으로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 재외공관은 국적국 영토 내 소재하며 한국의 법집행관할권이 미치는 ‘영토’가 아닌 장소로서 ‘국적국 밖’으로 해석할 여지가 없다. 또한 이 법안은 한국 내에서 체류하다가 난민 사유가 발생한 ‘체재 중 난민’의 경우는 아예 상정하지도 않고 있어,  논리적 정합성을 갖추었다고 보기 힘들다. 제주도 무사증 정책에 따라 입국한 외국인에게 난민신청권을 제한하는 취지의 개정안도 발의되었다. 역시 현실과 부합하지 않고, 모든 난민들에게 난민 지위를 인정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국제협약과도 동떨어진 법안이다. 한국 정부는 현재 난민신청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비자를 발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결국 모든 난민신청자들은 난민신청이라는 자신의 목적을 숨기고 목적과 다른 비자를 발급받을 수 밖에 없다. 제주도에 무사증으로 입국한 난민신청자들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들에 대해서만 난민신청권을 제한하겠다는 취지의 개정안은, 한국 정부가 운영하고 있는 입국 제도만을 적법하게 활용한 것일 뿐인 난민들의 정당한 권리를 박탈하고 있다.

 

발의된 법안 중 상당수는 거짓서류의 제출 또는 거짓으로 진술 또는 사실을 은폐한 경우를 난민 불인정 사유로 추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정안은 박해를 피해 국적국을 탈출한 난민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지 못하다. 상당수의 난민들은 국적국의 감시를 피해 급박하게 국적국을 탈출하기 위해 거짓 서류를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난민협약 제31조도 이러한 난민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불법으로 입국한’ 난민신청자들을 처벌하지 말아야 할 의무를 각 당사국에 부여하고 있다. 어차피 난민심사과정에서 난민신청자의 박해사유, 진술의 신빙성 등을 판단할 때 거짓 서류 제출 사실, 허위 진술 사실 등을 고려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 서류 제출 등이 확인되면 더 이상 구체적인 난민심사를 진행하지 않고 난민 지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개정안들은, 난민신청자의 불법적 입국 또는 체류 사실 자체로 처벌하여서는 안 된다는 난민협약의 정신과 충돌할 위험성이 높다.

 

 난민신청자의 체류지를 제한하거나, 모든 난민신청자를 시설 내 수용하는 등 난민신청자의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개정안들도 발의되었다. 난민협약 제26조는 난민신청자에게도 다른 외국인에 준하는 정도로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자유권 규약 제12조는 모든 사람의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국가안보, 공공질서, 공중보건 또는 도덕 또는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범위 내에서만 제한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안보, 공공질서 등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난민신청자의 이동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때 특정 집단에 대해 일괄적으로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식의 정책은 위법하며, 각각 사례별로 개별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이 국제적으로 확립된 기준이다. 그런데 난민신청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난민신청자들의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개정안은 외국인 당사자의 이동할 권리와 자유에 대한 침해가 과도하며, 침해되는 사익보다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이 더 크다고 볼 수 없어, 자유권규약 및 난민협약에 위반될 위험이 높다.

  

대한민국의 안전 및 사회질서를 해할 상당한 우려가 있는 경우, 박해가능성이 없는 국가로부터 왔거나 그러한 국가의 출신인 경우, 오로지 경제적 이유로 난민을 인정 받으려고 하거나 명백히 난민신청의 이유가 없는 경우 등을 난민 불인정 사유로 추가하고 있는 개정안도 발의되었다. 그런데 국제난민협약은 인도에 반하는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 입국 전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를 저지른 사람, 국제연합의 목적과 원칙에 반하는 행위를 한 사람 등을 이미 난민협약의 적용에서 배제하고 있다. 따라서 ‘안전 및 사회질서를 해할 상당한 우려가 있는 경우’라는 의미가 명확하지 않은 불확정 개념을 불인정 사유로 새로 도입한 개정안은 이미 난민협약에서 규정하고 있는 불인정 사유와 중복되거나, 난민협약 상의 불인정 사유보다 모호하게 해석될 여지가 넓어 오용의 가능성이 있다. 어차피 난민협약은 국가안보 또는 공공질서를 이유로 적법절차에 따라 난민을 추방할 가능성을 이미 열어 두고 있으므로, 이를 난민 불인정 사유로 별도로 명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위에서 간략하게 검토한 개정안들은 발의 전, 또는 발의 당시에 한국사회에서 넘실댔던 불안과 공포의 담론들을 그대로 적나라하게 반영한 흔적이 보인다. ‘가짜 난민’의 담론이 넓게 유포되자 ‘거짓 서류 제출’ 등을 난민 불인정 사유에 추가하고, 처벌을 강화하였다. ‘무비자로 난민들이 몰려온다’라는 공포가 확산되자 제주도 무사증 정책을 통해 입국한 난민들의 난민신청권을 정당한 사유 없이 박탈하거나, 재외공관에서만 난민신청을 받도록 하였다. ‘난민신청자들은 관리 감독 없이 전국에 흩어진다’라는 주장은 모든 난민신청자를 시설에 수용하는 법안에 착실히 반영되었다. 이러한 담론들은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숙성되지 않고, 선정적인 보도와 인터넷 여론 형성에 힘입어 급격하게 확산된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 개정안에서 이에 대한 충분한 고찰과 검토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 난민협약 당사국인 한국은 난민을 강제송환하지 않고 보호할 의무가 있으며, 이는 정책적 고려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번 제주도 예멘 난민 사태는 ‘난민 심사 절차는 어떠해야 하는지’, ‘난민의 한국 사회 통합은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등 한국의 난민제도 개선을 위해 치열하게 논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이러한 논의의 장을 마땅히 마련해야 했던 국회는, 대신에 즉자적인 반대 또는 혐오 여론에 떠밀려 이러한 담론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적극적 반대세력이 결집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는 데 급급했다. ‘여론 추수주의’를 넘어서 ‘혐오 추수주의’에 가까운 개정안들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보다 진일보한 난민법 개정안이 나오기를 희망한다.

  

동천 이탁건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