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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가 깨진 난민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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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단법인 동천 작성일18-07-20 17:09 조회1,82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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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를 받지 못하는 판단자는 존립의 근거가 없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법정드라마, 문유석 작가의 <미스 함무라비>에 나오는 대목이다. 사법부를 겨냥한 일침이지만, 이 말은 난민인정심사를 담당하는 법무부에도 적용된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던 본국을 떠나 좀더 나은 피난처를 찾아 온 난민의 자격을 심사하는 첫 번째 판단자는 법무부이다. 그런데 최근 난민인정을 위한 면접조사에서 허위로 작성된 난민면접조서 수십 건이 발견되었다.

난민에 대한 심사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확하고 세심한 심사과정이 선결되어야 한다. 즉, 박해 받을 가능성이 있는 본국으로 송환될 기로에 선 난민신청자가 자신의 박해사유에 대하여 충분히 설명할 수 있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난민심사를 위한 면접이 진행되어야 하며, 당사자의 모든 진술은 왜곡 없이 정확하게 기재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당사자의 진술에 통역인과 난민 면접을 담당하는 공무원의 편견이나 예단이 개입해서는 안 되며, 더구나 자의적으로 허위 내용을 기재하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아래는 2016년 작성된 이집트인 M씨의 난민면접조서 일부이다. 답변 내용이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난민신청인이 진술한 것이라고 볼 수 없고, 다분히 기록자의 부정적인 의도가 개입된 기록으로 보인다.  

 

문. 난민신청 사유를 말하시오.
답. 한국에서 장기간 합법적으로 체류하면서 일을 하여 돈을 벌 목적으로 난민신청을 하였습니다.
문. 난민신청서에 기재된 난민신청 사유는 모두 거짓인가요?
답. 예, 모두 사실이 아닙니다. 난민신청을 하려고 사유를 거짓으로 기재했습니다.

 


 이집트 국적의 M씨는 오랜 기간 위험을 무릅쓰고 이집트의 군부정권에 대항하고 노동자와 빈민층을 위한 활동을 지속해 오다가 정부의 박해를 피해 한국에 입국하였다. 입국 후 바로 난민인정신청을 하고 자필로 작성한 난민신청서에 자신이 이집트에서 한 정치적 활동 내용과 공격의 대상이 되었던 일을 구체적으로 기재하여 제출하였다. 그러나 M씨는 면담과정에서 인적사항에 대해서만 질문 받았을 뿐, 정작 중요한 난민신청사유에 대한 질문을 전혀 받지 않았다고 한다. 면접에 소요된 약 15분 내지 20분은 면접자의 입장에서도 난민신청자의 상황을 소상히 파악하기엔 너무나 짧고, 난민신청자 역시 본국에서의 활동과 난민신청이유에 대해 설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이후 M씨는 난민불인정결정을 받고 이의신청 단계에서도 기각결정을 받은 후, 소송을 제기한 이후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면접조서에 사실과 다르게 작성된 내용이 다수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졸속으로 진행되었던 면접이라는 것을 반증하듯 면접조서에는 생년월일부터 직업까지 엉뚱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난민면접의 핵심인 [박해사항] 부분에는 M씨가 난민면접 시 전혀 진술하지 않은 내용(박해받은 사실 없음)이 담겨 있어, 단순한 오기가 아니라 허위의 내용을 작출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이집트에서 해 온 정치적 활동과 그로 인하여 자국 정부로부터 받은 박해 내용 등을 상세히 적은 난민신청서를 제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와 같이 자가당착식 답변을 할 난민신청자가 있단 말인가?

작년 10월경 사법부에서 이와 같은 사례에서의 절차적 하자를 인정하여 난민불인정결정 취소 판결을 내린 이후, 법무부에서 문제의 부당성을 인식하고 몇 건의 직권취소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로 인해 난민신청자들이 입은 피해는 전혀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 M씨의 경우 난민불인정처분취소의 소를 제기한 이후 불인정결정에 대해 직권취소를 받고 이후 재면접 과정을 거쳐 난민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M씨는 난민인정신청이 불허된 때로부터 직권취소가 이루어진 1년 반 동안 난민신청자라는 불안정한 지위로 지내야 했으며, 더욱이 그 기간 동안 자녀를 출산하여 가족이 겪은 경제적, 심리적 어려움은 더욱 클 수 밖에 없었다.

M씨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피해자들은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자신의 난민신청이 왜 거부됐는지 모른 채 불안정한 지위에서 살아올 수 밖에 없었다. 최소 50명, 많게는 어느 범위까지인지 확인할 수 없는 다수의 난민신청자들이 한국정부의 주도 내지 방관 하에 소위 “가짜 난민”으로 치부되었던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종교적 소신 등에 따라 행동을 하다가 또는 전쟁으로 인한 박해를 피해 온 난민신청자들은 자신의 난민신청 사유가 단지 “돈을 벌 목적”으로 왜곡되었다는 것에, 그것도 한국 정부에 의해서 조장되었다는 점에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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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난민인권센터와 재단법인 동천은 법무부가 피해자들에게 보상하고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사례가 있는지 철저하게 밝혀내도록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하였다. 비단 특정 공무원과 통역인이 담당하였던 사건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 진행한 사건도 살펴봐야 하며, 무엇보다 최근 난민신청자의 수가 급증한다는 핑계로 난민인정절차를 졸속으로 진행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난민면접절차를 개선하여야 할 것이다.

최근 난민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넘어 혐오와 사회적 증오가 증폭되고 있다. 난민에 대한 오해와 특히 무슬림에 대한 가짜뉴스가 범람하고, 난민에 대한 찬반으로 사회가 양분되는 양상이다. 법무부는 잘못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이러한 여론에 편승하여 난민법을 남용하는 가짜 난민을 막는 방향으로 난민법을 개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을 내놓기 전에 법무부는 무너진 신뢰부터 회복해야 할 것이다. 부디 제주도에 추가 파견된 난민담당 공무원들이 위와 같은 전철을 또 다시 밟지 않기 바란다.  

 

재단법인 동천 권영실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