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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 칼럼] 변호사들의 공익활동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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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단법인 동천 작성일18-04-04 16:47 조회4,41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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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이익, 공공의 번영을 뜻하는 ‘공익’은 경계가 모호한 단어다. 어떤 행동이 특정인에게 이익이 되는지 아닌지는 비교적 쉽게 판단할 수 있지만, 공동체 전체에게 긍정적인지는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공공이 지칭하는 사회 구성원의 범위가 넓을수록 다양한 상식과 도덕관념, 이익들이 충돌하는 경우가 많고, 얼마만큼 공공의 이익이 되었는지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판단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연히 ‘공익’을 위한 활동을 지칭하는 ‘공익활동’의 적합한 정의와 정도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익을 위한 시스템을 찾고 만들어가는 길이 험난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변호사는 직업윤리 상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을 사명으로 한다. 그 연장선에서 우리나라는 2000년 7월부터 시행된 개정변호사법에 따라 변호사의 공익활동을 의무화하고 있다. 변호사의 공익활동을 법적 의무로 규정한 것은 세계최초다. 변호사법 제27조에 따르면 변호사는 일정시간 이상 공익활동에 종사해야 하며, 그 공익활동의 범위와 시행방법은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정한다. 법조경력 2년 미만이거나 60세 이상, 혹은 질병이나 기타 불가피한 사유가 있는 변호사가 아니라면 누구나 이 규정에 따라 공익활동을 수행해야 한다.

최근 이런 변호사의 공익활동 의무에 대해 다룬 보도가 있었다. “‘3만원이면 봉사 끝’... 꼼수 판치는 변호사 공익활동 의무제 (한국경제 2018.3.20. 링크)“ 기사는 현재 각 지방변호사회 별로 20~30시간의 공익활동 의무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공익활동으로 인정하는 범위가 너무 넓고, 실질적인 검증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내용이었다. 로스쿨 도입 이후 변호사 2만 명 시대를 맞이한 변호사들에게 공익활동을 통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강제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하는 질문도 던지고 있다.

사실 이런 질문들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법률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변호사 공익활동 법제화는 제정 당시 법조비리로 신뢰를 잃은 법조계의 신뢰 회복에는 큰 기여를 했지만, 이후 지속적인 반대 목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자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공익활동을 법률로 강제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비판과 공익활동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징계하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계속되었다. 이에 따라 제도 시행 1년이 지나지 않은 2001년 5월 서울지방변호사회는 ‘공익활동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연간 30시간이던 의무 공익활동 시간을 20시간으로 줄이고 로펌의 경우 공익활동 전담 변호사를 두어 의무 공익시간을 채울 수 있도록 했다. 이는 변호사들이 공익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현실을 반영한 고육지책이었지만, ‘변호사들은 공익활동에 관심을 갖지 않고 사익만 추구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공익활동에 대한 검증시스템의 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규정 제정 이후 거의 매년 계속되어 왔다.(법률신문 2014.9.18. 링크) 2014년에는 공익활동 내역을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대한변협에 소속 변호사 8명의 징계를 요청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공익활동 의무규정은 다시 큰 이슈가 되었고, 그 해 11월 서울변회는 공익활동 내용을 보고하지 않으면 공익활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는 규정을 삭제했다. 지난 2017년 11월 서울행정법원은 2014년 과태료 징계 처분을 받았던 변호사들이 변호사징계위원회를 상대로 낸 징계결정처분 취소소송(2016구합84849)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물론 변호사의 공익활동 의무를 축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만 있어온 것은 아니다. 변호사들의 공익활동 의무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그것과는 별개로 변호사의 공익활동을 활성화하고자하는 여러 노력도 계속되어왔다. 2011년 법무부는 ‘변호사 공익활동 활성화를 위한 지원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발표해 국내·외 변호사의 공익활동 및 지원현황에 대해 언급하며, 변호사들의 공익활동을 지원하는 전담조직의 필요성과 새로운 변호사조직형태인 공익법무법인 제도에 대한 아이디어를 이야기했다. 2012년 법무법인(유한) 태평양과 재단법인 동천은 1996년부터 미국의 공익전담 변호사와 로펌 변호사들의 공익활동을 관리·감독하며 변호사들의 공익활동 활성화에 크게 기여한 프로보노 인스티튜트(PBI: Pro Bono Institute)의 에스더 라던트 회장과 오멜버니 마이어스에서 공익전담변호사로 활동하는 데이비드 래시 변호사를 초청해 로펌 프로보노 활동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는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곳에서는 인적·물적 자원을 가지고 있는 로펌들이 연합하여 적극적으로 공익활동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과 변호사들의 프로보노 활성화를 위한 중개기관의 중요성 등을 강조했다. 2013년에는 대한변호사협회에서 로펌들의 공익성과 공익활동을 평가하기 위한 객관적인 지표를 제공해 공익활동을 활성화하고자 ‘로펌 공익활동 평가지표’를 발표했다. 이 평가지표는 현재 태평양을 비롯해 공익활동을 수행하는 국내 로펌에서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공익활동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8명의 변호사에 대한 서울변회의 징계 신청이 있었던 2014년 이후에도 변호사 공익활동 활성화를 위한 대한변협, 지방변호사회, 로펌 네트워크 차원의 유사한 연구와 시도는 계속 되고 있다. 2016년에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염형국 변호사를 초대 센터장으로 서울지방변호사회 프로보노지원센터가 개소하여 프로보노 활동을 하는 변호사와 공익인권단체를 지원을 시작했고, 재단법인 동천에서는 같은 해 12월 동천NPO법센터를 설립하여 프로보노 변호사를 양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한국경제 기사의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논의와 변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공익활동을 강요하기 보다는 변호사들이 자율적으로 공익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공익활동 인정 범위를 조정하여 형식적인 시간 채우기가 아닌 실질적인 공익활동을 할 수 있게 유도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기사에서 말하는 것처럼 공익활동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일 수 있다. 하지만 ‘3만원이면 봉사 끝, 꼼수 판치는 변호사 공익활동 의무제’라는 제목은 조금 아쉽다. 2017년 5월 서울지방변호사회는 기존 3곳이었던 공익활동 대체 기부단체를 9곳으로 확대했다. 변호사들이 기부를 통해 의무공익활동을 인정받을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늘어난 것이다. 추가된 기부단체는 재단법인 동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공익법센터 어필, 공익인권법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공익센터 감사와동행, 이주민지원센터 친구 등 공익사건을 수행하는 단체들이다. 이런 단체들에 기부해 공익전담변호사들이 안정적으로 공익사건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효율적이고 의미있는 공익활동이지 않을까? 직접 공익활동을 수행하는 대신 필요한 곳에 기부하는 행위 자체를 비도덕적인 꼼수라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또한 여러 로펌들이 지속적으로 채용을 늘리고 있는 공익전담변호사에 대해서도 소속 변호사의 개별 공익활동을 일방에게 전가한다는 비판이 있기는 하지만, 개별 변호사들의 흩어져 있는 공익활동보다 공익활동에 전념하는 1~2명의 변호사가 사회에 미치는 공익적 영향이 더 크다는 평가가 많다. 변호사업계는 이미 공익활동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고, 빠르지는 않지만 조금씩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기업들이 그러한 것처럼 아마도 의무감보다는 사회적책임을 온전히 수행하는 것이 필수불가결해진 현 사회에 대한 적응에 가깝지 않을까?

서두에 말한 것처럼 가끔은 꽤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 시도가 공익적이었는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다. 한편으로 “아무리 나쁜 결과로 끝난 일이라고 해도 애초에 그 일을 시작한 동기는 선의였다.”는 카이사르의 말도 있다. 어쩌면 사회가 할 일은 그 선의를 믿되 그 의도가 나쁜 결과로 흐르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바라봐주는 것이 아닐까한다. 반대로 변화를 시도하는 입장에서는 그 관심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마음을 열고 고깝게 느껴질 수 있는 말에도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할 것 같다. 그럴 때 우리의 노력이 좀 더 빨리 건강한 공익의 꽃을 피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꽃이 크게 피어나는 날을 위해 오늘도 작은 거름이나마 더하고 싶다.

-재단법인 동천 남준일 커뮤니케이션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