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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칼럼] 이주여성의 미투(Me too), 그리고 모두를 위한 적절한 주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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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단법인 동천1 작성일18-03-15 14:12 조회2,09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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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느 분야 할 것 없이 각계각층에서 미투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성적 피해를 당하고 있으면서도 숨죽이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외칠 수도 없고 외쳐봤자 들어주는 이 없는 미투의 외침, 바로 이주여성의 목소리입니다. 그들은 권력관계에서 약자의 지위에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말이 서툴고,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도 잘 모릅니다. 불안정한 체류자격이라는 여성 이주노동자의 취약한 구조를 이용한 피해 사례는 언론을 통해 끊임없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주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성범죄의 위협은 이들에게 주어진 열악한 주거환경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 임금체불 문제로 도움을 요청한 캄보디아 출신 여성 이주노동자의 숙소는 비닐하우스 안에 있는 샌드위치 패널이었습니다. 방충망도 되어 있지 않아 벌레가 들어와도 어쩔 도리가 없는 비좁은 방을 세 명의 여성이 함께 쓰고 있었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방문을 안에서만 잠글 수 있는 구조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외출 시에도 문을 열어두고 다닐 수밖에 없다 보니 사생활 보장이 전혀 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퇴근하여 안에서 문을 잠그더라도 열쇠는 사업주가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사업주는 그 방을 수시로 드나들 수 있게 되어 있는 셈이지요. 게다가 바로 옆 방은 남성 이주노동자들의 숙소인데 냉방시설이 안 돼 있기 때문에 무더운 여름에는 남성 숙소나 여성 숙소나 문을 열어놓고 잠을 자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피곤에 지친 몸 하나 편안히 뉠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이 임금체불로 고용센터에 신고를 한 이유는 초과 근로한 임금을 사업주가 숙소비 명목으로 월급에서 공제하였기 때문입니다. 인원이 많을 때에는 총 17명이 함께 거주했지만 화장실은 한 개뿐이었던 이 기숙사의 한 달 숙소 비용은 인당 30만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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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지구인의 정류장]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라는 문구로 시민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여도 이주노동자의 주거실태는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몇몇 사업주의 불량한 양심과 돈만 아는 이기심 때문이라고 강 건너 불 보듯 해서는 개선되지 않을 사안입니다. 시급한 것은 법의 개정과 지침의 개선입니다. 일자리를 위해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는 대부분 사업주가 제공하는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체류 외국인 이백만 명 시대에 살고 있는 현재에 근로기준법상 기숙사 규정은 1953년 제정된 이래 개정되지 않은 채 당시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입니다. 게다가 기숙사의 구조나 설비, 보안, 위생시설 등 생활에 필수적인 설비에 대한 구체적 규정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컨테이너나 가건물, 비닐하우스 등 임시 주거시설의 비율이 높아도 제재할 도리가 없을 뿐 아니라, 화재 등의 재해나 위생 문제, 사생활 침해 문제 등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의 고용과 관련된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역시 숙소에 관하여 어떠한 규정도 두고 있지 않습니다. 사업주에 대한 고용허가의 요건 또는 이주노동자가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있는 사유에도 주거 조건이나 기숙사 환경에 관한 사항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사업주가 불법 건축물을 제공하거나 잠금장치, 화장실, 취사시설, 냉난방 시설 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숙소를 제공했을 시, 이주노동자가 고용센터에 문제제기를 하여도 어떤 적절한 조치를 취할 근거가 없는 실정입니다.

지난 3 9일에는 국회의원회관에서 이주여성들의 미투(Me Too)” 사례 발표가 있었습니다. 그 중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여성노동자는 사업주에게 성폭행을 당하여 도망치고 싶었지만, 사업장 변경에 사업주가 동의하지 않으면 미등록신분이 될 수 밖에 없고, 스스로 성폭력 피해를 입증해야만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다기에 피해 사실을 숨길 수 밖에 없었다고 토로하였습니다. 농업이주여성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2016년도 성폭력 피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12.4%가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남녀가 같은 방에 거주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상식적인 규정마저(근로기준법 시행령 제55)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주여성 노동자들은 사업주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 남성 이주노동자들로부터의 성폭력 위험에 놓이게 됩니다. 이들의 호소는 조금 불편해도 좋으니 제발 불안하지 않는 잠자리를 제공해 달라입니다.

오는 5월에는 유엔 주거권 특별보고관이 한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유엔 주거권 특별보고관의 임무는 유엔 결의로 채택된 적절한 삶의 질에 대한 권리의 한 요소인 적절한 주거권(the right to adequate housing)에 집중하여 한국의 취약한 주거상황을 조사하여 한국정부에 권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민낯을 공개해야 하는 특보의 방한을 대비하여 재단법인 동천은 이주노동자 주거권 개선 네트워크의 다른 단체들과 함께 이주민의 주거권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자 합니다. 우리 삶의 시공간은 일터와 가정을 드나들며 밤과 낮을 공유하는 일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유엔 해비타트III의 핵심의제인 모두를 위한 적절한 주거권은 여성, 그리고 이주민, 사회경제적으로 궁핍한 이들까지 포괄합니다. 특히 여성 이주노동자의 경우 남녀평등과 차별금지 측면, 그리고 빈곤층과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보호의 관점에서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공감의 능력을 바탕으로 연대가 이루어지고, 그 힘으로 사회변화가 만들어집니다. 여성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오늘날, 그 아픔에 공감하는 범위가 선주민여성에만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의 일원인 이주여성이야말로 사회적 위드유(With you)가 절실합니다. “조금 불편해도 좋으니 제발 불안하지 않는 잠자리를 제공해 달라는 서글픈 여성 이주노동자의 아픔을 함께 느끼며, 그들의 세미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공감과 지지를 통해 연대의 손을 내밀기를 희망합니다.

 

재단법인 동천 권영실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