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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 칼럼] “그 사람의 인생을 이해하는 것” (김다애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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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단법인 동천 작성일12-05-30 00:00 조회2,15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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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의 인생을 이해하는 것”.

난민소송업무를 하다 보면 심적으로 힘들 때가 기쁠 때보다 더 많은 것 같다.
정기적으로 소송 패소 사실을 알려드려야 하고, 소송과정이 너무 힘들어 출국을 결심하신 분께 조언을 드려야 하고, 모든 절차가 끝났지만 법무부 단계의 불허 결정이 취소되지 않은 경우 앞으로의 ‘옵션’을 함께 고민해드려야 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소송과는 상관없는 예상하지도 않았던 전혀 새로운 문제들이 생긴다. 가령 출국유예 만료일 연장을 하지 않아 강제 출국을 당할 위기에 처한다든지, 불법 취업으로 단속을 당해 구금될 상황에 처한다든지.. 난민인정을 받았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족의 입국을 돕다가 자신도 모르게 범법 행위를 하게 된 분, 여행증명서 발급 절차를 잘 몰라 생긴 문제에 당황해 하시는 분. 어느새 손전화에 난민 이름이 뜰 때마다 긴장하는 버릇이 생겨버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쁜 순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1년 반 전에 동천과 인연을 맺었던 S씨가 얼마 전에 ‘체류자격 거주(F-2)’가 적힌 외국인 등록증을 들고 방문하셨다. 난민지위가 확정된 것이다. 1심에서 승소했지만 법무부에서 항소해 2심이 진행되었다가 다시 승소했고, 법무부에서 상고하지 않아 몇 주 전에 최종 확정이 되었던 사건이었다. S씨 사건을 1심부터 담당했던 이경환 변호사님, 리서치/번역 업무를 도왔던 케이스워커(caseworker: 난민사건에 배정되어 변호사 업무를 지원하는 인력) 그리고 당사자 본인신문에서도 통역을 도와주셨던 통역인분까지 모처럼 함께 만나 함께 축하하고, 근황을 나누었다.



사실, S씨를 도와드렸던 사람들은 이보다 더 많다.
인터뷰를 진행하고, 리서치/번역 업무를 도왔던 케이스워커들, 협력 단체 간사님 그리고 인턴들, 통역을 도와주셨던 분들과 자료 확보에 도움을 주셨던 S씨 지인분들, 특히 케이스워커 관리부터 인터뷰 일정을 조정하고 소송진행상황 및 S씨의 근황을 파악하는 등 케이스 매니지먼트 업무를 담당한 세 명의 ‘예쁘고 착한’ 코디네이터들.
 
S씨는 지난 2년 동안 동천이 bkl 공익활동위원회 소속 변호사님들과 협력하여 대리한 약 40명의 난민신청자 분 중의 한 분이다. 그 동안 약 30명의 변호사님, 약 50명의 (리걸클리닉 학생들을 포함한) 케이스워커들, 그리고 다수의 단체 관계자분(국장님, 대표님, 간사님, 인턴님 ^^)들이 힘을 합쳐 난민법률지원을 해오고 있다.
 
힘을 합치는 방법’이 궁금한 분들을 위해, 잠시 2010년으로 돌아가보자.

2010년 말. S씨가 법무부에서 최종 불허 결정을 받았다. 친구의 도움으로 본인이 직접 난민신청을 했던 S씨는 우연히 난민을 돕고 있는 단체를 알게 되었고 도움을 구하게 되었다.


2011
년 초. 그 단체에서 S씨의 사건을 검토한 후 동천에 전달했다. 동천에서 S씨의 케이스를 검토(screening) 한 후, 담당변호사와 케이스워커(로스쿨 리걸클리닉 학생 또는 동천 인턴)를 배정했다. 이후 케이스워커가 기초자료 검토 및 기본적인 리서치를 한 후 장시간(평균 4~5시간)에 걸쳐 S씨의 전체적인 진술을 듣는 1차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후 케이스워커는 1차 인터뷰를 바탕으로 인터뷰 기록 및 보고서를 작성했고, 변호사님이 사건의 쟁점을 파악하여 추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사건에 대한 법률지원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그 이후 몇 차례의 변론기일 및 당사자신문이 있었는데 첫 인터뷰가 끝나고 인터뷰를 진행했던 케이스워커가 "S씨가 많이 우셔 마음이 아팠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는 많이 긴장하시고 면담을 어려워하셨는데, 당사자본인신문에서 침착하게 잘 답변하셨던 S씨. 아마 준비하는 과정에서 변호사님과 케이스워커들의 도움에 많이 힘을 얻었을 거라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케이스워커들은 담당 변호사님의 감독 하에 소송이 시작단계부터 끝나는 단계까지 다양한 업무 지원을 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인터뷰 준비 및 진행, 서면/전화를 통한 추가 진술 및 증거자료 확보, 준비서면 초안 작성, 서증번역, 특히 당사자본인신문 준비업무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단체에서도 번역업무 관련해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 특히 소송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지 않는 다양한 체류자격 관련 문제들이 발생하는 경우 단체 관계자 분들이 그 동안 난민지원을 해온 노하우를 공유해주고 계시는데, S씨 사건 같은 경우 소송 중에는 별 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최종 승소 판결을 받은 후 체류 자격 변경 안내 등과 관련된 부분에서 도움을 주셨다. 

담당 변호사는 진술과 리서치 내용 그리고 충분하지 않은 입증자료(대부분의 난민소송의 경우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많지 않은 편이다)를 바탕으로 난민의 이야기를 법률적으로 풀어 소송을 진행하는데, 본인들의 이야기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보통 의뢰인들은 변호사님을 가장 많이 의지하는 것 같다. 변호사의 경우 사건 진행뿐만 아니라 케이스워커들의 업무를 평가하는 역할도 감당하고 있다. 업무면에서뿐만 아니라 난민과의 관계면에서도 향후 법조인으로 성장할 학생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어주고 있는 변호사님들을 보면 이러한 협력 시스템을 코디네이팅하는 사람으로서 참 기쁘다.

동천은 주로 협력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케이스 매니지먼트 및 코디네이팅을 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데, 글 서두에서 알 수 있겠지만 분명 간단한 업무는 아니다. 동천에서는 이러한 업무 외에도 지속적으로 다양한 주체(변호사, 케이스워커, 로스쿨 학생, 통역인 등)들이 양질의 난민법률지원을 제공할 수 있도록 리걸클리닉 확대, 교육프로그램 개발 등 케이스워크 시스템을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정신 없이 관련업무를 하면서 깨닫게 된 것은 난민법률지원이 단순히 소송대리를 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우리가 ‘케이스워크 시스템’이라고 부르는) 협력을 통해, bkl 난민소송 변호사와 케이스워커 그리고 동천의 난민팀은 그 정도와 성격은 다르지만 각자 나름대로 의뢰인을 알아가고, 의뢰인과 관계를 맺어가고 있다. S씨와, P씨와, R씨와, L씨와 좋은 친구가 되었던 것처럼, 오랜 시간 의뢰인을 대리하면서, 그의 출신지역이나 연루되었던 사건에 대해 꼼꼼히 리서치 해가는 과정에서, 그녀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계속해서 그들과 연락을 주고 받으며, 또는 케이스를 검토하며, 우리는 그렇게 한 사람의 인생을 만나가고 있다.

오랜만에 만난 S씨는 예전보다 많이 편안해 보였다.
이제는 옛날이 되어버린 지난 시간들을 나누며,
처음 난민법률지원 업무를 시작했을 때가 생각이 났다.
그 때 떨리는 마음으로 인터뷰를 준비하던 나에게 존경하는 어떤 분은
“그 사람의 인생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해주셨었다.
그때는 너무 이상적인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새 삶을 얻었다”는 S씨의 고백을 들으며,
그리고 우리 덕분에 “더 밝은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는 자진출국을 앞둔 어느 친구의 메일을 읽으며 이제는 조금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함께 기뻐하고, 함께 우는 삶. 참 멋지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