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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칼럼] 조국을 위한 질주. 난민 마라토너 이야기 -김진 사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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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단법인 동천 작성일12-09-03 00:00 조회2,44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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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베를린 올림픽, 올림픽의 하이라이트인 마라톤 경기의 우승자는 대한민국의 손기정 선수였습니다. 
이 때 그는 42.195km를 2시간 29분 19초에 주파해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땄고, 함께 출전했던 남승룡 선수가 동메달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일본의 지배 하에 있었기에 그는 일본 대표팀에서 뛰어야 했고 이름도 일본식인 Son Kitei로 호명되어야 했습니다. 

경기장에서는 일장기가 오르고 일본 국가 ‘기미가요’가 흘러나왔으며 
손기정 선수는 월계수 나무로 옷에 새겨진 일장기를 가리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힘들게 딴 금메달이 조국이 아닌 일본의 금메달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베를린 올림픽에서의 우승과 이어진 ‘일장기 말소사건’은 일제 식민지 통치 아래서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고 
당시 조선사회 지도자들에게도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로부터 76년 후, 얼마 전 막을 내린 런던 올림픽에는 당시 우리나라의 설움을 떠올리게 한 선수가 있었습니다. 
남수단 출신의 마라토너 구오르 마리알 선수인데요. 남수단 출신으로 내전을 피해 이집트로 탈출했다가 
난민지위를 인정받아 미국에 재정착해 미국에서 살고 있는 선수입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사귀기 위해 육상부에 가입했다는 마리알 선수는 특출한 재능을 인정받아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마라톤을 계속 하여 여태까지 국제경기 마라톤 완주기록이 단 두번임에도 불구하고 
예선을 통과해 런던 올림픽 출전권을 거머쥐게 되었습니다. 

남수단 공화국은 작년 7월, 수단에서 분리 독립한 아프리카 동북부의 신생국 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수단은 영국과 이집트의 식민 지배에서 독립했지만 아랍계 무슬림이 지배하는 북수단과 
기독교와 토착 종교를 주로 믿는 남수단은 독립 이후 50여년 이상 길고 긴 내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그리고 2011년 7월 9일, 마침내 남수단은 남수단 공화국 (The Republic of South Sudan)이라는 이름으로 독립함과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여 유엔의 193번째 회원국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IOC에는 새 회원국이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가입 후 최소 2년이 지나야 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이에 작년 독립한 남수단은 올해 런던 올림픽 출전이 불가능했던 것이지요. 

이에 IOC는 마리알 선수에게 남수단이 아닌 수단 소속으로 올림픽에 출전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내전에 가족 및 친지 28명을 잃은 마리알 선수에게 있어서 조국은 수단이 아닌 남수단이었기에 
이 제안에 대한 거절의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 

결국 올림픽 출전의 꿈이 무산될 뻔 할 찰나, 신생 남수단 정부의 노력과 미국 변호사들, 
그리고 여러 인권단체의 도움에 힘입어 런던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남수단 국기 대신 올림픽 오륜기를 달고 무소속 선수로 출전하는 조건부 출전이었고 
마리알 선수는 이 조건을 받아들여 올림픽기와 함께 마라톤에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마리알 선수가 처음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그가 8살 때였습니다. 
뒤에는 총을 든 사람들이 따라오고 있었고 그는 적군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달려야 했습니다. 
그는 잡히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목숨을 걸고 달렸다며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훈련 중 인터뷰에서 그는 “20년 전 헤어진 후 생사도 모르는 가족들이 지금 제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TV를 보기 위해서는 가장 가까운 도시인 Panrieng지역까지 50km를 걸어가야 하지만요. 
그리고 남수단의 어린이들이 저를 보고 앞으로 다가올 날에 대한 희망을 키울 수 있었으면 합니다.” 고 출전 소감을 밝혔습니다.

76년 전 손기정 선수가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를 달고 올림픽에 출전하는 아픔을 겪었듯이, 
그리고 우리 국민들이 그를 보고 독립의 염원을 굳건히 했듯이 
지금 이 시각에도 세계 여러 곳의 약소국과 신생국들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들에 대해, 그리고 이들의 조국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하고 생각할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리알 선수는 런던 올림픽에서 2시간 19분을 기록생애 3번째 국제경기 완주에 성공했습니다.

                                                                                        -동천 김진 사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