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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 칼럼] 영화 한편의 여유 - 에브리바디 올라잇 (원제: The Kids Are All Right) 을 보고 (박정은 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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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단법인 동천 작성일11-04-25 00:00 조회2,55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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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

                                                                                        에브리바디 올라잇 (원제: The Kids Are All Right), Lisa Cholodenko

                                                                                                                                          박정은 변호사 (법무법인 태평양)


대학에 들어가서 얼마 되지 않아 매료되었던 것 중 하나가 딱딱한 법대 교과서가 아닌 사회과학서적들을 주변 사람들과 같이 읽는 것이었다. “몇 조를 어떻게 해석하는 게 통설, 판례이고, 소수설은 뭐고”로 가득한 책들은 전해주지 못하는 진짜 세상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나 스스로 세상에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자신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보기 좋게 한 방 맞은 것이 “그 언니들”과의 만남이었다. 동성애자였던, 정확히 말하자면 레즈비언이었던 그 언니들은 평범한 대학생들이었고, 나와 페미니즘 공부를 같이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그것은 그저 그들의 성적 취향일 뿐이라고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랜 시간 이 사회에서 학습되고, 단련된 이성애자에게는 "이물감"이라고 밖에는 표현되지 않는 자동반사적인 느낌이 있었던 것이다. 이 사회가 동성애자에게 가하는 차별과 폭력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내재되어 있는지 스스로 확인할 수 있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에브리바디 올라잇'의 원래 포스터와 국내 포스터)


영화 “에브리바디 올라잇(원제: The Kids Are All Right)”은 지난해 개봉한 영화로 리사 촐로덴코 감독의 세 번째 영화다. 아네트 베닝(‘닉’ 역할)과 줄리안 무어(‘줄스’ 역할)라는 걸출한 배우 둘이 주인공을 맡은 이 영화는 레즈비언을 다룬 영화라면 으레 그럴 것 같은 레즈비언 부부가 겪는 세상의 평지풍파를 다룬 영화가 아니다. 예상과는 달리 그냥 어떤 가족이 가족 안에서 겪는 갈등에 대한 "평범한" 이야기인데, 사실 이 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싶다. 영화는 처음부터 누가 봐도 별로 유별날 것 없는 어느 가정을 비춘다. 단, 엄마, 아빠가 엄마, 엄마라는 게 이 가족의 다른 가족과의 차이다. 엄마, 엄마, 아들, 딸이 구성원인 이 가족의 삶은 여느 가족의 삶과 그다지 다를 것이 없다. 부부간의 사랑과 약간의 갈등, 어느 자녀들이나 가지고 있음직한 조그만 비밀들,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지다가, 아이들이 생물학적 아버지를 찾기 시작하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레즈비언 부부인 닉과 줄스는 자녀를 갖기 위해 정자은행에서 한 남자의 정자를 받아, 각각 아들(레이저)과 딸(조니)을 낳는다. 레이저와 조니는 생물학적 아버지에 대해 궁금증을 갖게 되고, 결국 생물학적 아버지인 폴을 만나게 된다. 이렇게 만나게 된 폴은 꽤 멋진 사람이었다. 스포츠를 좋아하고, 다정다감한 성격에 멋진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이 남자와 아이들은 점점 친해지게 되고, 폴과 가족은 함께 식사를 하는 등, 묘하지만, 그래도 꽤 나쁘지 않게 지내게 된다. 그러나 닉은 이런 상황이 달갑지 않다. 닉은 줄스와의 관계에서 가장의 역할을 맡고 있는데, 닉의 눈에 폴은 평화로운 자신의 가정에 끼어든 침입자일 뿐이다. 그러다가 줄스는 폴의 집 조경을 담당하게 되고, 완벽주의자인 닉과의 사이에서 답답함을 느끼던 차에 자유분방한 성격의 폴에게 호기심을 갖게 되면서, 결국 폴과 사고를 치고 만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닉은 가뜩이나 완전하고 평화롭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가정에 폴이 끼어들어 아이들을 빼앗아 가고 있다고 느끼던 상황이었는데, 줄스마저 빼앗겼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줄스와 닉의 갈등은 극으로 치닫는다.
 
결론은? 결론은 영화를 통해 직접 확인하시길. 이 영화의 위 스토리를 가만히 다시 한번 훑어 보면 발견할 수 있는 재밌는 사실 하나는, 엄마-엄마 가정이라는 사실을 지우고 나면 그저 평범한 “사랑과 전쟁”류의 스토리라는 것이다. 부부가 있고, 자녀가 있고, 부부 중 일방이 잠시 바람이 났고.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그들도 그저 다를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려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저 조금 다른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가족을 꾸릴 권리를 제한할 수 있을까? 2000년 네덜란드는 처음으로 동성결혼을 허용했고, 2003년에 벨기에가, 2005년에 캐나다와 스페인이 동성결혼을 허용했다. 비록 결혼은 아니더라도 동성애자 커플의 법적 결합을 허용한 국가로는 덴마크,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스웨덴이 있다. 미국은 1996년 하와이주에서 동성결혼이 합법이라는 판결을 한 바 있고, 2004년 2월에는 메사추세츠주 대법원이 동성결혼에 완전한 권리를 부여한다는 판결을 하기도 했다.
 
물론 법이 허용하지 않더라도 그냥 살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법률혼을 통해 꾸려진 가족을 단위로 많은 법제도 및 사회시스템이 형성되어 있고, 상속, 입양 등에서 법이 인정한 결혼이라는 점은 필수적이거나 중요한 요소가 된다. 동성애자 커플은 누군가의 합법적 부모가 될 수도 없고, 일방이 타방의 적법한 상속인이 될 수 없으며, 각종 법적 보호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가족과 그 가족 안의 갈등은 한편으로는 동성애자들이 마치 괴물이라도 되는 양 취급하는 이 사회의 시선이 아무런 근거도 없는 것이라는 점을,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에 정말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있을 수 있고, 그렇게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꾸릴 권리를 제한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생각하게 만든다(사실 동성부부뿐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한부모 가족은 따가운 시선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그저 세상이 “보통”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다를 뿐이다. 단지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법적 보호의 범위 밖에서 편견과 싸우고 있는 그들에게 그 따가운 시선을 거두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이 영화는 사실 어떻게 보면, 아이들이 "남성"인 “아버지”라는 존재를 그래도 필요해 한다는 것처럼 읽힐 수도 있고, 레즈비언인 줄스가 남성인 폴과 엮이게 되는 부분은 이성애가 동성애에 비하여 자연스럽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오해를 살 수도 있으며, 굳이 닉과 줄스의 관계가 남편-아내를 단지 두 여자에게 투영해 놓은 것처럼 설정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남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영화를 보는 내내 동성커플을 다루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생길 수 있는 이질적인 느낌은 받지 못한 채, 그저 물 흐르듯 스토리에 빠져들 수 있도록 영화가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감독의 역량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이 세상의 평범한 어느 한 가족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이성애자 특유의 "자동반사적 이물감"마저도 깜빡 잊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그런데, 꼭 국내 포스터 문구는 저렇게밖에 만들 수 없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