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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 칼럼] 공무원의 통보의무와 미등록 체류자의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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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단법인 동천 작성일17-06-28 00:00 조회2,16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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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반이민 행정명령이라고 불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한국에서도 널리 회자되었다. 반이민 행정명령은 시민사회의 광범위한 비판과 반대를 받았고, 법원의 임시처분에 따라 일부 집행이 중지되기도 하였다. 미국 내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산 또 다른 트럼프의 행정명령은 이른바 피난 도시”(Sanctuary City)에 대한 연방 재정 지원의 삭감이다. 피난 도시란, 이주민들이 체류 자격이 있는지 지역 공무원들이 묻지도 않고, 알게 되더라도 이민국에 통보하지 않는 정책을 펼치는 지방자치단체를 지칭한다. 대표적인 피난도시인 샌프란시스코의 조례는 피난도시정책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주민을 포함한 모든 주민을 위한 공공보건, 안전, 및 복지의 확보와 행정수요 충족이라는 시정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시 공무원과 주민들간의 신뢰, 존중과 소통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필수적이다.”   

워싱턴 DC, 뉴욕,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등 400여개의 도시들이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미등록 체류자의 적극적인 체포·구금에 비협조적인 자세를 유지하자, 트럼프는 급기야 피난 도시에 대한 연방 재정 지원 중단을 명령하였고, 피난 도시인 샌프란시스코 시 등은 이를 다투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소송을 지원하기 위해 이주인권단체는 물론이고 샌프란시스코 시 경찰, 병원, 학교 등 행정기관도 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하였다. 단체들의 의견서는 피난 도시정책이 중단되면 이주민들이 범죄를 목격해도 경찰을 찾아가지 않아 경찰행정의 공백을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 학교 내 이주민 학생에 대한 따돌림이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 적절한 예방접종과 치료를 받지 못한 이주민들로 인해 공공보건 체계가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로 가득하다. 결국 지난 4월 말, 샌프란시스코 연방 지방법원은 행정명령 집행의 일시 중지를 위한 임시처분을 내려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다.

한국에 트럼프 대통령은 없지만, 이주민 인권단체들은 오랫동안 비슷한 문제에 대한 우려를 표명해오고 있다. 출입국관리법 상의 이른바 공무원의 통보의무가 그것이다. 출입국관리법 제84조 제1항은 출입국관리법 제46조 제1항 각 호에 해당하는 사람을 발견하면 이를 출입국관리사무소에 통보해야 할 의무를 공무원에게 지우고 있다. 미등록 체류자가 대표적으로 이 조항이 예정하는 통보 대상에 해당한다. 이러한 의무가 미등록 체류 억제라는 목표에 얼마나 실효적인 수단인지의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이 조항이 미등록 체류자에게 어떠한 장벽으로 다가오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외국인들에게 이 조항이 질곡으로 다가올 때는 이들이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권리를 누리고자 할 때이다. 임금체불을 구제 받기 위해 노동청을 방문하려고 할 때, 자녀의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 관공서를 방문하려고 할 때, 범죄 피해를 신고하기 위해 경찰청을 방문하려고 할 때, 미등록 이주민들은 통보의무조항으로 인해 자신들이 권리 구제를 받을 수 있을지,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게 된다.

출입국관리법 상 공무원의 통보의무가 도입된 이후,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문제제기로 법이 개정되어 학교, 병원 근무 공무원과 일부 범죄피해자에 대한 경찰 공무원의 통보의무가 면제된 것은 긍정적인 변화이다. 그러나 여전히 법이 포괄하고 있지 못하는 취약계층의 범위가 상당하다.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임금체불 등 근로기준법 위반 피해자가 대표적이다. 임금체불 피해자가 노동청 조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고용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의해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넘겨지는 일도 있었다. 그 외에 형사사건에 대한 증인, 자녀의 출생신고를 하려는 부모 등도 통보의무 면제대상에서 제외된다.

실제 법 집행에 있어 면제 대상 범위가 불확실한 것도 문제다. 폭행 피해자가 쌍방폭행으로 신고 되어 단속된 사례, 교통사고 피해자가 입원 중 단속된 사례 등이 목격되고 있다. 또한 현행 법은 공무원의 통보의무를 면제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공무원이 자의로 출입국관리소에 미등록 체류 사실을 통보하거나 인계하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결국 면제 대상이 되는 외국인들도 단속의 두려움 때문에 관공서와 공무원을 접촉하는 것을 꺼리게 된다. 이러한 국가기관에 대한 두려움과 불신은 저조한 범죄 신고율, 사적구제에 대한 의존으로 이어지게 되고, 이는 다시 미등록 외국인에 대한 강력한 단속의 논거로 활용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재단법인 동천은 이주정책포럼 등 다수의 이주민 단체들과 협력하여 공무원의 통보의무를 제한하기 위한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추진 중인 법 개정안은 앞서 나열한 사유들의 경우 공무원이 미등록 체류 사실을 출입국관리사무소에 통보하지 못하도록 하고, 그 외의 경우에도 통보로 인하여 직무수행 본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통보의무를 면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법원의 임시처분 신청 인용으로 인해 일단 한숨 돌리게 된 샌프란시스코 시의 피난도시조례는 다음과 같은 선언으로 시작한다. “샌프란시스코 시는 피난자들의 도시(City of Refuge)임을 확인한다.” 한국 사회도 이방인들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섬세한 법 제도 설계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동천 이탁건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