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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 칼럼] 대안교육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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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단법인 동천 작성일17-04-27 00:00 조회1,83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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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서 해리포터나 엑스맨 시리즈를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마법사의 피를 이어받은 해리포터는 호그와트 마법학교에 입학하여 마법사들의 사회를 위협하는 볼드모트 무리를 무찌르면서 의젓한 마법사로 성장합니다. 한편 엑스맨 시리즈는 인류 사회에서 배척당한 돌연변이(mutant)들이 자신들의 삶과 권리를 지키기 위해 여러 빌런들에 대항해서 맞서 싸우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영화에서 등장하는 마법사들이나 돌연변이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국공립학교에서 국영수를 중심으로 한 입시교육을 받는 대신, 호그와트 마법학교 또는 자비에 영재학교에서 자유롭게 생활하고 모험을 즐기며 자신들의 개성에 맞는 교육을 받음으로써 어엿한 성인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영화니까 저런 학교가 가능하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현실에 그런 학교들이 있습니다. 바로 대안학교라고 불리는 교육기관들입니다. 대안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일반적인 교과목 수업 및 직업체험을 통한 진로교육 뿐만 아니라, 직접 농사를 짓거나 가구를 만드는 생태교육을 받고, 인문학 독서교실에 참여하여 치열한 토론을 벌이기도 하며, 다양한 문화예술 수업을 통해 감수성이 풍부한 사춘기 시절부터 여러 가지 예술 컨텐츠를 접할 기회를 갖기도 합니다. 나아가 학생들은 학교의 주인으로서 학생 전원이 참여하는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을 통해 교육내용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고 공동생활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며, 스마트폰의 사용을 금지하거나 수업출석여부를 자율화하는 등의 규칙을 직접 세우기도 합니다. 대안학교들 중에서는 사교육 포기각서까지 작성하는 곳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입소문이 나서 입학경쟁률도 꽤나 높습니다.

  

하지만 현행법상 이러한 대안학교들이 모두 합법적인 것은 아닙니다. 사립 대안학교는 크게 교육감에게 설립인가를 받은 인가형 대안학교와 설립인가를 받지 않은 비인가형 대안학교로 나뉩니다. 비인가형 대안학교는 학력인정이 되지 않아 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검정고시를 보아야 하며, 학교 운영에 필요한 재정지원도 거의 받을 수 없습니다(대안학교의 설립·운영에 관한 규정 제4, 6조 참조). 비인가형 대안학교들이 학력인정의 문제와 어려운 재정상황에도 불구하고 인가를 받지 않는 이유는, 인가를 받기 위해 충족해야 하는 시설요건의 기준이 높고, 인가를 받을 경우 수업시간 수의 100분의 50 이상을 국민공통교과로 채워야 하는 등 대안학교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교육과정의 운영이 교육감의 통제 하에 놓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비인가 대안학교의 법제화에 관하여 교육부와 대안교육단체들 사이에서 최근까지 법령 개정에 관한 논의가 있어 왔으나, 좀처럼 입장이 좁혀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는 백년대계(百年大計)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매년 개편되지만, 우리 학생들에게 현실은 여전히 힘들고 가혹합니다. 교실은 경쟁의 전장이 되었고, 친구는 밟고 일어서야 할 적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학교는 경쟁을 강요하고 승자와 패자를 줄세우기하는 고통스러운 공간으로 전락하였습니다. 그나마 입시경쟁에서 살아남은 극소수의 학생들에게는 취업시장이라는 더 큰 벽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공교육 쇠퇴의 원인에는 여러 진단이 있을 수 있지만, 아마 교육제도 자체의 문제만은 아닐 것입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이제는 우리의 무의식까지 지배한 것 같은 지긋지긋한 학벌주의, 그리고 그 학벌만을 중시하고 숭상하는 기업문화, 공급되는 인력을 모두 소화하지 못하여 포화된 노동시장, 보다 근본적으로 일시적인 실패와 다원적 가치추구에 관대하지 못한 사회적 시선까지, 우리 공교육제도가 입시경쟁에 치우칠 수밖에 없도록 옭아매는 악순환의 사슬은 어느 것 하나 끊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결국 이러한 현상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우리 공교육은 내용을 조금 바꾸는 것만으로는 스스로는 변혁되기 어려울 것인바, 이 지점에서 위와 같은 악순환에 조금 빗겨 서 있는 대안교육이 우리 공교육에 긍정적 충격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헌법 제3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여 국민의 교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고, 이는 국가에 의한 교육조건의 개선정비와 교육기회의 균등한 보장을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 이해되고 있습니다(헌법재판소 1999. 3. 25. 선고 97헌마130 결정 참조). 따라서 국가는 대안교육을 원하는 국민들을 위해 마땅히 교육조건을 개선정비하고 대안교육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하여야 하며, 이 때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국가의 간섭은 최대한 지양되어야 합니다(헌법 제31조 제3). 그렇다면 대안교육의 가치를 인정하고 교육방식을 존중하는 정책이 우리 헌법의 이념에도 비로소 부합하는 방향이 아닐까요?

 

우리는 마법사나 돌연변이는 아니지만, 모두가 다른 얼굴·목소리·성격을 갖고 있는, 각자 다른 개성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모두 다른 존재들에게 모두 같은 내용의 교육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최근 대선후보들의 교육공약으로 외고와 자사고의 폐지, 학제 개편 등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데, 어떤 후보가 당선이 되든 다음 정부에서는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방식에 보다 관대해질 수 있기를, 그리고 진정 학생들을 위한 교육제도가 실시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정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