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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 칼럼] 이주 배경 아동들도 배제되지 않는 보편적 출생신고 제도의 도입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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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단법인 동천 작성일17-02-28 00:00 조회1,97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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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하나. 필리핀 이주여성인 제인씨(가명)은 한국에 있는 필리핀 가게에서 만난 한국 남성과 동거를 시작하며, 쌍둥이 딸들을 출산하였다. 제인씨는 이미 다른 한국 남성과 혼인관계에 있었으나, 남편의 계속되는 폭력으로 인해 별거 중인 상태였다. 쌍둥이 딸들의 부모는 딸들의 출생을 신고하기 위해 관공서를 방문하였으나, 제인씨의 혼인관계가 정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고가 불허되었다. 동거남의 폭행 등으로 둘은 별거와 동거를 오가고 있으며 생업에 바빠 쌍둥이 딸들이 4살이 된 지금도 출생 신고를 하지 못하고 있다.

사례 둘. 한국에서 난민 지위 인정을 받은 아담씨(가명)은 2016년 한국에서 자녀를 출산하여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 구청을 방문하였다. 출신국 정부의 박해를 피해 한국으로 도망친 아담씨 입장에서는, 한국에 있는 출신국 외교공관에 방문하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청 담당자는 출생신고서를 접수 받을 수는 있으나, 신고에 따른 어떠한 효력도 없고 출생 증명 서류를 발급해줄 수도 없는데 굳이 신고를 해야 하냐고 반문하였다.

국제아동인권센터, UNICEF,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재단법인 동천 등13개의 단체로 구성된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는 작년부터 ‘보편적 출생신고 제도’ 도입을 위한 노력을 꾸준히 경주해 왔다. 보편적 출생신고 제도, 또는 보편적 출생등록 제도(Universal Birth Registration)라는 용어는 아직 한국 사회에서 생경하다. ‘출생신고’란 부모가 자녀가 태어난 뒤 이름을 정하였으면 주민센터로 가서 서류를 작성하는 절차로 알고 있으며, 그 제도의 촘촘하지 못한 구멍 사이로 빠져 나가는 아동들의 문제가 사회적 관심을 받은 적이 없는 까닭이다. 그러나 위의 사례들과 같이 부모의 무관심이나 방치, 또는 법 제도 상의 공백으로 인해 출생신고가 되지 못한 아동들의 사례는 꾸준히 발견되고 있다. 보편적 출생신고 제도란, 출생한 모든 아동들이 출생국 정부에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출생신고는 아동이 법률 상의 신분을 부여 받고 이를 증명할 수 있도록 하는 시작점이다. 국가는 출생신고를 통해 아동의 존재를 인지하게 되고, 아동은 국가가 발급하는 출생증명서를 통해 자신의 출생사실과 신분을 증명할 수 있게 된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은 필수예방접종의 대상에서 배제되기 쉽고, 보험 가입도 불가능하다. 국가가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여 부모의 학대, 유기, 아동매매의 위험에서 구출되기 힘들다. 이주아동의 경우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지 못하는 문제에 봉착한다.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모든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되고, 성명을 가진다”) 및 유엔아동권리협약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되어야”) 등의 국제 인권 규약도 보편적 출생신고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도 보편적 출생신고 제도를 도입할 것을 촉구하는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유엔자유권위원회 등의 권고도 수 차례 내려진 바 있다. 그러나 현행 법제도는 한국에서 태어난 모든 아동들의 출생등록을 보장하기에는 부족하다. 1차적인 출생신고 의무자가 부모이며, 신고 의무자가 신고를 해태하는 경우에 국가의 감독 및 개입이 미흡한 실정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집단은 이주아동들이다. 한국의 출생신고 제도는 기본적으로 ‘국민’을 대상으로 놓고 있기 때문에, 외국인의 경우에는 ‘국민’과 가족을 이룬 경우에만 아동의 출생신고가 가능하다. 따라서 이주외국인은 본국의 대사관 등을 통해서 출생신고를 해야 하는데, 난민과 미등록 이주민들은 출생신고가 불가능한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출신국가의 박해로 인해 한국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자의 자녀의 경우, 출생신고를 위한 본국 정부의 행정 지원을 기대하기 힘들 수 있다. 미등록 이주민의 경우, 대사관에서 출생신고를 조건으로 ‘불법체류’를 중단하고 귀국하라고 종용하는 사례가 확인된다. 미등록 체류자의 수를 줄이라는 한국정부의 압박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한국 관공서에 방문하여 출생신고를 접수하는 방법 밖에 없다. 실무적으로 이러한 신고는 ‘가족관계등록부 작성에 관한 신고 이외의 가족관계등록신고’로 분류하여 ‘특종신고편철장’에 편철하여 보관하게 된다. 이러한 절차는 법규 상의 근거가 명확하지 않고 확립된 내부규정이 없어, 실무자들이 임의로 신고를 접수 및 심사하거나, 접수를 거부하는 사례들도 목격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신고의 효력이다. 이주아동의 출생신고는 현행 가족관계등록법 상의 ‘출생신고’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신고 수리 증명서’의 발급만 가능하다. 신고 수리 증명서는 ‘출생한 사실’을 증명하지 않고, ‘신고를 수리했다’는 사실만을 증명하므로, 이 서류가 ‘출생 증명서’의 기능을 하리라 기대하기 힘들다. 즉, 국가가 아동의 출생 사실은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동이 자신의 출생사실과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는 법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공론화하기 위해 작년부터 캠페인을 펼치고, 가을에는 국가인권위원회와 공동으로 토론회를 주최하였다. 올해는 인권위, 대법원 등 정부 기관과의 간담회를 통해 의견의 간극을 좁혀 법 개정에 필요한 동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특히 이주아동과 관련된 현행 실무 절차의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고, 이주 아동들의 출생신고를 국가가 관리 및 확인하여 ‘출생 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도록 관련 법 규정의 개정을 이루어 내고자 한다. 올해 재단법인 동천은 출생신고 되지 않은 이주 아동뿐만 아니라, 다양하게 차별 당하고 소외되는 이주아동들의 구체적인 삶 속에 들어가, 그들에게 필요한 법률적 지원을 모색할 것이다.

-동천 이탁건 상근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