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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 칼럼] 아동성폭력으로 인한 출산경험과 혼인취소 - 대법원 판결을 앞에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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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단법인 동천 작성일15-04-30 00:00 조회1,89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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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5. 국회에서는 “아동 성폭력으로 인한 출산 경험과 혼인취소”를 제목으로 한 토론회가 열렸다. 동 토론회는 1심과 2심에서 패소, 대법원에 상고하여 판결을 앞 둔 베트남여성의 혼인취소소송에 대한 토론회로, 여성폭력근절을위한공동행동,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유엔인권정책센터,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전국가정폭력상담소협의회, 전국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협의회, 전국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협의회, 전국이주여성쉼터협의회, 장애여성공감,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단체연합,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아이사이주여성다문화공동체, 원불교인권위원회,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위원회가 주최했으며, 진선미의원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주관하였다. 그리고 동천은 이 토론회에 주최 단체로 참여하였다.  
아동 성폭력으로 인한 출산 경험과 혼인취소.jpg
그렇다면, 이 사건에 어떤 문제가 있기에 이 많은 단체들이 토론회를 주최하며 문제를 제기했을까. 우선 이 사건의 경과를 살펴보자.   
 
베트남여성 A(당시 22세)는 2012. 4.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한국남성 B와 결혼해서 2012. 7. 한국에 입국하였다. 그리고 6개월 후인 2013. 1. 시아버지C에게 강간을 당했다. A는 집을 나와 C를 고소했고 C는 강간죄로 7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이후 B는 A에 대해 혼인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이유는 위 강간 사건 항소심 재판 중 ‘A가 베트남에서 다른 남자X와 사실혼 관계에 있었고, 자녀Y를 출산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는데, B는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피고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민법 제816조 혼인취소사유 중 제3호 소정의 ‘사기로 인하여 혼인의 의사표시를 한 때’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여기서, A가 X와 사실혼 관계에 있었고 Y를 출산한 사실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A는 만 13세 무렵 X에게 납치되어 3일 동안 감금을 당한 채 성폭력을 당했고, 그로 인해 Y를 출산하게 된 또 다른 성폭력 피해가 있었다.   

B의 혼인취소청구에 대해 1심은 사실혼 전력과 출산 전력은 혼인의사를 결정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 임에도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이를 알았더라면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 혼인취소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즉 A의 사기라고 본 것이다. 

이에 대해 A는 1) 베트남 현지 결혼중개업자에게 자신의 출산경력에 관해 고지하였으므로 고지의무 위반이 아니라는 점, 2) A의 출산은 미성년자에 대한 납치, 강간 피해의 결과이고 피고의 자유의사에 반한 것이었으며, 당시 미성년자였던 피고는 그로 인해 회복하기 어려운 정신적 트라우마를 경험하였는데, 납치, 강간과 같은 끔찍한 과거의 경험을 혼인상대방에게 고지하도록 하는 의무를 지운다면 이는 피해자인 피고에게 2차 피해를 가하는 것인 점을 고려하면, 피고가 출산경력을 고지하지 않은 행위가 혼인의 본질에 반하는 것으로 볼 수 없어, 위법한 기망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 3) A가 혼인 이후 혼인생활을 원만하게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는데, 시아버지가 A를 성폭행하자 B와 B의 모가 피해자인 A를 보호하지 않은 채 과거 출산경력을 문제 삼아 혼인취소를 구하는 것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항소했다.  

하지만 2심 역시 혼인취소를 인정했다. 납치, 강간을 당하여 출산을 하게 되었다는 사정만으로는 그러한 출산경력을 혼인 상대방인 원고에게 고지할 의무를 면한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다만 X와의 관계는 약탈혼의 형태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적법한 사실혼 관계가 성립하였다고는 보기 어렵다며, 이 부분 B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판결했다.  

그리고 이제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판결이 합리적인, 더 나아가 인권친화적인 판결일까. 토론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정현미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판례의 내용대로 통상 혼인경력과 출산경력은 혼인에 관한 의사결정에 있어 중대한 요소에 해당한다. 그러나 우리가 다루고 있는 이 ‘통산의 출산’이 아니라 ‘아동시기에 당한 강간으로 인한 출산경력’이라는 점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아동의 경우 범죄피해와 피해경력은 드러나지 않게 보호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문제된 이 사안처럼 출산경력은 아동범죄피해자보호라는 국내법과 국제법의 전체적인 조망에서 평가한다면 아동성폭력으로 인한 출산경력을 혼인에서 적극적으로 밝힐 것을 의무지우기 어렵다. 따라서 가사소송에서 그것을 고지하지 않은 것을 기망으로 하여 혼인 취소사유로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이한본 변호사, 민변 여성인권위원회 가족법팀장) 다른 사정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출산경력을 숨긴 사실이 혼인의 취소사유가 된다는 점은 쉽게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다만,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남성의 경우 혼인 전 출산경력은 어떤 면에서는 성경험과 다르지 않게 판단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남성의 출산경력을 혼인 취소 사유로 인정하지 않고, 여성의 출산경력만을 혼인 취소 사유로 인정한다면, 성차별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차원에서 출산경력 자체를 혼인 취소사유로 삼을 수 없다는 주장 또한 조심스럽게 제기해본다. (한편) 이 사건에서는 피고가 납치, 강간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피고에게 혼인과정에서 납치, 강간이라는 범죄사실로 인한 피해를 입었다고 말하여야 할 신의칙상 의무를 인정할 수 없다. 범죄의 피해자에게, 그것도 성폭력 범죄의 피해자에게 성폭력 피해사실을 야기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 주장 당부를 떠나서 그 주장하는 것 자체가 범죄 피해자에 대한 심각한 인권 침해이며 헌법에 반하는 행위라고 할 것이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일천한 인권의 지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결혼이주여성 A씨가 겪어내고 있는 중첩된 인권침해 현실에 참담함과 공분을 금할 길이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피해자의 과거 성력 등 인격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1) 성폭력 피해로 인한 임신,출산의 특수성을 고려한 피해자 권리보장제도가 마련되어야 하며, 2) 성폭력 수사,재판과정에서 발생하는 2차 피해인 인격권침해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장명선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 교수) 성폭력 생존자가 아동 성폭력으로 인한 생존자라는 점을 감안하지 않았으며, 범죄행위로 인한 출산을 고지하지 않은 것이 기망행위로 보는 것은 형법상의 책임문제로 보아도 비난가능성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타당한 판결이라 볼 수 없다. 재판부가 국제결혼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과정 중에 충분한 통역이 제공되는가 등의 문제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결과로서 이는 여성차별과 더 나아가 인종차별로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해응 서울시외국인명예부시장) 이 혼인의 파탄은 시부의 성폭력 범죄행위로 인한 시댁 측에 있다. 그럼에도 외국인 남편 측에서 굳이 이혼이 아닌 혼인무효로 소송한 이유는, 그 동안 국제결혼이주여성에 대한 한국 전반사회의 차별적 시선이라고 생각된다. 가난한 다른 나라 출신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 등이 내재된 시선이라고 생각된다. 결과적으로 혼인무효가 되면 추방당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혼인 파탄의 책임이 이주여성에게 있지 않은 한, 이주여성은 살고 싶은 곳에서 살 권리가 있다. 

이 사건의 경과를 지켜보고 토론회에 참석하며, “나라면”이라는 생각을 수 없이 했다. “내가 베트남여성이라면”, “내가 그 남편이라면”...,,, 혼인경력과 출산경력은 결혼에 있어 분명 중요하다. 이 사실을 혼인 후에 알았다면 혼인관계를 중단할 이유 또한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때 누구에게 책임이 있다고 보는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즉, 이혼사유인가 아니면 혼인을 취소당해야 할 유책한 사유인가의 문제이다. 
나라면, 혼인경력과 출산경력을 몰랐던 배우자가 그 사실을 알고 이혼하자고 한다면, 충분히 이해하고 당연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만 13세 미만의 나이에 겪은 성폭력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 잘못이기 때문에, 그 책임을 지고 혼인을 취소당해야 한다면 그건 견디기 어려운 고통일 것 같다. 부디 대법원이 “보통”에서 벗어나 합리적이고, 나아가 인권친화적인 판결을 내려주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