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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 칼럼] 시부에 의한 성폭행 피해 결혼이민여성의 혼인취소 사건을 조력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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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단법인 동천 작성일14-12-29 05:15 조회1,85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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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 민변 여성위 내 이주여성법률지원단을 통해서였다. 이주여성법률지원단 위은진 변호사님이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를 통해 초기 상담 후 이 사건을 함께 지원할 변호사를 모집하였고, 이에 자원하였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소라미 변호사님이 결합하였고,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심각한 인권침해에 대해 적극적으로 운동의 차원에서 대응하고자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본부 및 전북지부, 대구지부 등 전국의 이주여성 단위에서 연대하였다.
이 사건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결혼이민여성 A씨는 미성년인 만 13세에 이웃 마을 갔다가 이웃마을 사람들에 의해 강제로 한 이웃마을의 성인 남성의 집에 옮겨졌다. 같은 날 그 집에서 A씨는 그 남성에 의해 강간 피해를 입었고, 그 후 3일 동안 이 여성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자신의 집에 억류한 상태로 수차례 강간했다. 이후 A씨는 곧바로 임신을 했고, 아이를 출산하였다. 아이는 곧바로 남성의 어머니가 데리고 갔다. A씨는 집을 나와 식당과 공장 등지에서 일하다가, 한 외국인 남성과 국제결혼을 하였다. 국제결혼 맞선 당시 A씨는 중개업자를 통해 자신의 출산사실을 고지하였는데, 중개업자는 그 사실을 배우자가 될 이 남성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렇게 A씨는 혼인 후 이주하여 밤낮으로 남편의 가정을 돌보고, 바깥일에도 계속 같이 다니는 등 성실하게 시부모와의 생활을 해 나갔다. 그러던 중 A씨는 시아버지에게 집에서 두 차례 성추행을 당하고, 이어 성폭행을 당했다. A씨는 시아버지를 고소하였고, 시아버지는 죄가 인정되어 징역 7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이러던 중 A씨의 남편 측에서 "A씨가 출산사실을 숨기고 결혼했는데, 시아버지의 성폭행 사건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혼인 취소의 소를 제기하였다.
이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이글이글 분노) 이 남편이 혼인취소를 구해도 되는 거야?” 이렇게 반응하였지만, 혼인취소 사유로 ‘중요한 사실에 대해 고지하지 않았고, 이것이 기망이라 볼 수 있느냐’에 관한 다툼이 쉽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바로 분노하였듯, 이 여성이 ‘결혼중개업자에게 출산사실을 고지하였지만, 남편에게는 고지하지 않은 것’이 남편에 대한 기망으로서 혼인취소사유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 공동 대리인단에서 판단하고 주장한 내용을 간단히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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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세계이주민의 날 기념 이주노동자 대회에서 이 사건에 관해 법원에 공정한 재판을 촉구하는 발언을 함>
첫째로, A씨의 출산 사실은 미성년자에 대한 약취, 감금, 강간 피해의 결과로서 A씨의 자유의사에 반하는 행위의 결과이다. A씨가 미성년으로서 경험한 범죄는 우리나라와 이 여성의 국적지에서도 현행법상 불법성이 중대하고 국제인권규범에 비추어 볼 때 여성과 아동에 대한 인권침해가 심각한 범죄이다. 범죄피해 당시 미성년자였던 A씨는 그로 인하여 회복하기 어려운 정신적 트라우마를 경험하였다. 그럼에도 A씨에게 납치, 강간과 같은 기억하고 싶지 않는 끔직한 과거의 경험을 혼인 상대방에게 고지하도록 의무를 지울 수는 없다.  
둘째, 국제결혼은 언어, 문화, 풍습 등이 다른 나라 사람 간에 이루어지는 혼인이다. 언어나 영어와 같은 제3의 언어를 이용하여 상호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을 전혀 갖지 못한 채 결혼중개업자를 통해 맞선이라는 만남을 가진 후 짧은 시간 안에 혼인이 성립되는 경우, 결혼 당사자들은 결혼중개업자에게 자신의 정보를 제공하고 상대방에 대한 정보도 오직 결혼중개업자를 통해 획득하게 된다. 그러므로 혼인 당사자는 자신이 결혼중개업자에게 제공한 정보는 상대방에게 모두 사실대로 제공되었으리라 믿고, 또한 결혼중개업자가 제공하는 상대방의 정보도 모두 사실이라고 믿고 혼인을 하게 된다. A씨 역시 결혼중개업자에게 출산 사실을 언급하였고, 또한 맞선 자리에서 한국인 남편과는 의사소통조차 거의 되지 않았다. 따라서 A씨가 한국인 남편에게 출산사실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은 것을 여성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
셋째, A씨와 그 남편사이에 혼인이 파탄 나게 된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원인은 시아버지의 강간 범죄 때문이다. 강간 피해에도 불구하고, 형사재판에서 시아버지의 강간에 대해 유죄판결이 선고되자 오히려 남편 측이 A씨에게 사기를 이유로 한 혼인 취소를 청구하였다. 하지만, 이 사건 혼인 파탄의 가장 큰 원인은 시아버지에 의한 강간 사건이다. 그리고 시아버지로부터 강간피해를 당한 전 후로도 남편은 A씨를 피해로부터 구해주거나 도와주지도 않고, 여성의 아픔을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이 사건을 조력하면서 순간순간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였던 것 같다. 가장 혼란스럽게 하였던 것은 A씨가 우리와 면담하는 과정에서 계속 남편의 이야기가 나오면 좋아하고,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였다. 그 때 그 순간은 ‘내가 이 분을 조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이 진정 이 분을 위하는 길일까’ 하는 고민이 참 많이 되었다. 그냥 마음대로 ‘A씨는 더 이상 지금의 남편과 지금의 시부모와 함께 살 수는 없다’고 단정 짓고 이 사건을 끌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렇게 계속할수록 두 사람의 관계회복은 점점 더 불가능해져서 모두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결국엔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이러한 가능성을 고민하고 A씨와 대화해서 함께 방향을 잡아간 상담 선생님들과 이 문제의 해결방안을 A씨의 입장에서 함께 머리 맞대어 고민한 연대 단체 선생님들, 함께 수행하는 선배 변호사님들의 방향에 많이 의지를 했던 것 같다. 두 번째 어려웠던 순간은 당사자본인신문이 있던 기일에 법정에 A씨의 남편이 출석하여 너무도 담담하고 침착하게 “A씨가 나를 속였고, 나는 A씨와의 혼인을 취소하고 싶다”는 진술을 분명하게 하였던 때였다. 남편은 약간의 지적장애가 있었지만, 그 진술은 너무도 일관되고 정확하였다. 나는 남편이 법정에 나온다고 하였고, A씨가 남편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법정에서라도 서로의 마음을 깨닫게 되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그러한 시나리오를 예상하고 있었나보다. 남편의 위와 같은 진술에 순간 말문이 막히고 참 어려웠다. 과거의 출산사실이 남편에게는 큰 충격일 수 있겠지만, 역시나 남편도 A씨의 과거의 피해와 이 여성의 기구한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기 전에 이미 깊은 오해가 앞섰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 앞에서 남편의 당시의 마음을 남편 본인의 음성으로 들으면서 A씨는 충격을 받았을 것 같아 걱정이 많이 되었다. 그렇지만 한 편으로는 A씨가 남편에 대한 혼란스러웠던 본인의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을 것 같기도 하였다. 우리는 결국 이 사건은 혼인취소로 결론지을 문제가 아니며, 시아버지에 의한 강간과, 그 과정에서 배우자로서 부양 및 조력의무를 위한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은 남편의 귀책사유에 따른 이혼으로 해소되어야 한다고 주장을 마무리 하였다. 이 사건은 1월 19일 판결선고를 앞두고 있다. 법원은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될까.
아직도 한켠에서는 변호사, 상담가, 남편의 어머니 등 많은 조력자가 이들 사이에 있었고, 시아버지에 의한 강간이라는 너무 큰 사건이 이들 사이에 있어 이 부부가 서로를 만나 대화를 하고, 스스로의 판단과 감정 하에 부부사이를 이어가거나 헤어지는 등 관계를 결정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있었다면 조금 달라졌을까 하는 고민이 있고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감정 다툼에서 과연 피해 입은 이주민을 조력하고자 하는 변호사는 어떠한 역할을 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하여도 꼭 이야기를 나누며 답을 얻어가고 싶다.
부가적으로 사건을 떠나 이 사건을 수행하면서 얻은 것들이 있는데, 첫 번째는 이주여성이 구조적인 문제로 인권침해 등 피해를 입었을 때 소송 등은 해결방법의 일부일 뿐이고 소송으로 해결되거나 해소되지 못하는 문제도 많다는 점과, 운동의 방식으로 사건의 억울함과 부당함을 알리고 문제를 지적해서 개선해 가는 것이 큰 힘을 가지고 있고, 그 과정 또한 매우 유의미하다는 점이었다. 단체들이 연대하여 대응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경험할 수 있어서 참 많이 배운 것 같다. 그리고 두 번째, 공동으로 대리하는 두 분 변호사님이 A씨의 상황에 진심을 다해 공감하고, 이성과 감성을 필요한 순간에 발휘하면서 정성을 쏟는 모습에 순간순간 많이 감탄하였던 것 같다. 앞으로 내가 의뢰인 한 명 한 명을 만나고 그 사건을 대할 때 가져야 할 마음가짐, 태도, 열정 등을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또한, 서면에 모두가 책임감을 가지고 의견을 교환하며 성실히 작성하고, 초안이 작성되면 피드백을 꼼꼼히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공동대리의 힘과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매우 감사하였다.
2기 펠로우 이주민 팀 김연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