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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인종차별과 건강권_권영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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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단법인 동천 작성일22-06-02 15:24 조회61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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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과 건강권

재단법인 동천 권영실  변호사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이 잘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다고 하면서 외국인 건강보험제도를 비판하고, 일부 외국인 직장가입자가 주로 외국에 체류하는 가족도 피부양자로 올려놓고 건강보험 혜택만 받게 하는 문제를 지적하였다. 이에 대해 당시 이재명 후보를 비롯하여 여러 언론은 혐오와 증오를 부추기고 갈등 분열을 조장하는 정치라고 비판하였고, 오히려 현행 외국인 건강보험 제도가 이주민에게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정말 내국인의 건강보험제도에 외국인들이 편승하여 혜택만 보고 있는 것일까? 건강보험 재정을 보더라도, 외국인 가입자의 건강보험 재정수지는 예전부터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내국인 건강보험에서 나오는 적자를 오히려 외국인이 메꾸고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혹자는 외국인이 건강보험제도를 악용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악용하는 사례가 있는지 그 실상을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 건강보험 혜택을 받겠다고 일부러 아픈 사람은 없다. 한국에 입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아파서 치료를 받았다고 해서, 또는 만성질병이 있어 치료를 계속 받았다고 해서 전부 건강보험을 악용하는 사례라고 속단할 수는 없다.

 

직장가입자 피부양자 사례도 마찬가지이다. 외국인이 한국에 가족을 동반할 수 있는 체류자격은 제한되어 있다. 고용허가제를 통한 이주노동자들은 가족을 동반해서 한국에 체류할 수 없고, 다른 체류자격도 배우자와 미성년자녀로 한정되거나 아예 동반하여 체류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내국인이나 외국인의 직장가입자 피부양자 인정기준은 동일하나, 내국인에 비해 외국인의 피부양자 수는 절반 이하이다(2021년 말 기준). 결국 외국인 건강보험 직장가입자가 피부양자를 많이 등록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 뿐더러, 이주민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야기하는 문제가 있다.

 

현재 외국인의 피부양자 요건을 강화해서 외국인 피부양자가 보험급여 혜택을 받으려면 국내 입국 후 6개월 이상을 거주하도록 하는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다. 대부분의 피부양자는 직장가입자에 의존하고 있는 배우자나 미성년 자녀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이 해당기간 동안 겪게 될 의료공백이 우려될 수밖에 없다.

 

사실 건강보험 외국인 지역가입자 부분에 더 큰 문제가 있다. 2019년도 국민건강보험법이 개정될 때 이주민 지역가입이 의무화 되었으나, 외국인 지역가입자는 현재 보험료, 세대구성, 보험료 체납에 대한 불이익 등에 있어 차별적 대우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지역가입자의 경우 소득과 재산을 기준으로 건강보험료가 정해지는데, 이주민의 경우 소득재산을 기준으로 책정된 건강보험료가 평균보험료보다 낮아도, 전체가입자의 평균보험료를 하한으로 보험료를 납부하게 되었다. 월평균보험료는 2022년도 기준 124,770원으로, 소득이 적어서 생계가 어려운 이주민도 모두 높은 보험료를 내야 하는 가혹한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지역가입자 세대합가 기준도 차별적이다. 내국인과 달리 외국인은 개인을 각 세대로 보고 배우자와 미성년자만 동일 세대로 합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노부모를 부양하는 경우나 갓 성인이 된 자녀도 모두 별도로 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 또한 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했을 때 받게 되는 불이익도 훨씬 큰데, 내국인과 달리 보험료를 한 달이라도 내지 않은 경우, 즉각 보험적용이 중단되어 급여를 받을 수 없고, 체납이 계속되면 체류자격도 연장해주지 않아서 일부 이주민의 경우에는 생계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건강보험료부터 납부해야만 하는 실정이다. 이에 재단법인 동천은 현행규정이 국제인권규범이나 헌법에 위배된다고 보고 2019년 여러 이주단체들과 함께 헌법소원을 제기하였고, 3년째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그 외에도 현행 건강보험제도는 이주민들의 건강권을 온전히 보장하지 못할 뿐 아니라 국적과 체류자격을 기반으로 내국인과 차별적인 대우를 받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되면서 출국유예를 받았던 이주민들이 있다. 코로나 유행으로 항공기 운행도 중단되고, 체류기간은 만료되었는데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들에게 법무부에서는 출국기한의 유예를 길게는 1년 넘게 해주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출국유예를 받은 기간 동안 건강보험 가입자격이 상실된다는 사실을 몰랐다. 건강보험공단에서는 계속 보험료를 납부하라는 고지서를 보내 왔고, 출입국청에서도 이에 대해 아무런 안내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보험료를 납부하고 아플 때 병원도 이용했는데, 이후 건강보험공단에서 그 기간 동안 가입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당시 받았던 보험급여를 부당이득금으로 결정하고 환수처분을 한 것이다. 건강보험공단 정보공개청구 결과에 따르면 출국기한의 유예를 받은 외국인이 건강보험료를 납부하였다가 건강보험공단에서 납부한 보험료를 반환처리한 건수가 9천 건에 이른다.

 

건강보험은 사회보험이라는 특성상, 사회연대의 원칙을 기반으로 법에 의해 가입의무, 보험료 납부의무가 주어지게 되고, 능력에 따른 납부, 필요에 따른 수급 원칙이 적용된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보험의 적용에 있어 국적이나 체류자격을 기준으로 차별적으로 적용할 근거는 없다. 한국사회에 정착해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이주민에게 건강보험을 차별 없이 적용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다. 이것은 특히 전지구적으로 대유행하는 질병이 주기적으로 발생할 경우, 모두의 건강권을 폭넓게 보호하고, 의료보장의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는 길이다.

 

코로나를 통해 나 혼자만의 건강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우리 주변에 있는 모두의 건강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미 우리는 이주민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데, 일부 부당한 사례를 확대 해석하여문제의 원인을 이주민에게 돌리거나 잘못된 편견을 기반으로 혐오를 조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 최고 수준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 상태 향유를 위한 모든 사람의 권리 특별보고관’(이하 건강권 특별보고관)은 인종주의를 핵심적인 건강결정요소이자 건강불평등을 조장하는 요소라고 보고 “Racism and the right to health”라는 주제에 대한 각국의 현황을 조사하고 있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도 인종차별철폐협약 제5eiv호 건강권 관련 일반논평 제37호 작성을 위한 공청회를 2022823일 개최 예정이며, 이를 위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이와같이 국제사회는 코로나 이후 건강에 대한 권리에 있어 인종, 비시민, 이주민에 대한 구별과 차별을 건강권 보장에 가장 심각한 장벽으로 보고, 이를 철폐해나가기 위한 협력을 촉구하고 있다. 한국은 여기에 어떻게 응답해야할까. 앞으로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재정비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