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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무국적 시설거주 중증장애인이 한국에서 자립하기까지_정제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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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단법인 동천 작성일22-04-26 11:31 조회63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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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국적 시설거주 중증장애인이 한국에서 자립하기까지

재단법인 동천 정제형 변호사

(이 글은 2022. 4. 11. 법조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

 

 2020년 겨울, 필자가 근무하는 재단법인 동천에 서울의 한 시설에 머무르고 있던 중증장애인 A씨가 시설 직원 분들과 함께 도움을 요청하러 찾아왔다. 중증 지적장애와 언어장애를 가진 A씨는 인사를 하고 앉아 직원들과 변호사들 간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혼자 살고 싶어요?’ 라는 질문에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은 필자에게 인상 깊은 장면으로 남아있다.

 

A씨는 50대 초반의 중증 지적 장애인으로 한국에서 중화민국 국적의 아버지와 한국 국적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A씨는 구 국적법에 따라 중화민국 국적을 취득하였다. A씨는 출생 직후 체류자격을 받아 생활하다가 부모의 사망 등으로 인해 돌봐줄 사람이 없어지자 약 15세 경 관할 행정청으로부터 시설로 인도되었다. A씨가 머무르던 시설은 현재 서울시의 탈시설 지원 계획에 따라 거주장애인 전원을 지역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시설 직원들은 A씨의 자립의사를 파악하고 지원하고자 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A씨가 과거 시설에 입소한 이후로 단 한 번도 체류자격이 갱신되지 못한 채 미등록 상태로 한국에 머물러왔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A씨는 자립은커녕 당장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A씨가 머무르던 시설은 전환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한국에 A씨를 도와줄 가족이 전혀 없었다. A씨는 그 동안 시설거주자로 분류되어 기초생활보장급여를 받아왔으나, 이 역시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하는 것이어서 중단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장애인등록도 할 수 없어 어떠한 복지서비스도 기대할 수 없었다. 미등록 체류로 인해 강제퇴거가 되면 한국에서만 평생을 살아온 중증장애인 A씨가 연고도 없는 중화민국에 거주 허가를 받아 사는 것도 불가능했다.

 

결국 위기에 처한 A씨를 조력하기 위해서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온 A씨의 귀화를 진행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나 귀화를 신청하기 위해선 적법한 체류자격이 있어야 하는데 그간의 미등록 거주에 대한 범칙금 3000만원을 납부하지 않으면 체류자격의 발급이 불가능하였다. 이에 대하여 필자를 비롯한 공동대리인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고 법무부장관에게 A씨의 여러 정상을 고려하여 통고처분을 면제해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한 끝에 범칙금을 면제받아 A씨의 체류자격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간이귀화를 신청하였으나 국적법 상 자신의 자산이나 기능에 의하거나 생계를 같이하는 가족에 의존하여 생계를 유지할 능력이 있을 것이라는 귀화요건이 문제가 되었다. 위 요건을 충족하는지 입증하기 위해 제출해야 할 서류는 국적법 시행규칙과 국적업무처리지침에 따라 정해진다. 관계법령에서는 특별귀화의 경우엔 생계유지능력의 입증을 면제하고, 간이귀화의 경우에도 결혼이민자 중 일부에게 제출 서류를 완화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장애를 가져 국가의 적절한 지원이 병행되어야 생계유지가 가능한 이들에 대해서는 증명서류를 완화하는 조항은 없었다. 결국 규정의 미비로 한국인으로 정체성을 가지고 평생을 한국에서 살아온 A씨를 비롯하여, 중증장애인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귀화가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도, 올해 2월 법무부에서 A씨의 사정과 생계유지능력을 판단함에 있어서 장애인에게 동등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국적업무처리지침을 개정하고 간이귀화신청을 하는 장애인의 경우에는 장애인증명서, 장애정도심사용 진단서 등을 제출하는 것으로 생계유지능력입증을 대신할 수 있도록 완화하였다. 나아가 귀화신청자에 대한 종합평가에서도 장애의 정도가 심한 정신적 장애인에 대해서 면제할 수 있는 조항을 두었다. 결국 A씨는 귀화하여 한국 국적자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A씨와 같이 장애인이자 이주민이어서 더욱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례들은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국내 체류 외국인의 친자녀와 입양자녀의 체류자격이 달라 입양자녀의 장애인등록이 안되기도 하고, 장애인 등록이 가능한 이주민이라도 복지서비스 이용에 있어서 차별을 받기도 한다. 시설의 직원들, 시민단체, 변호사, 법무부가 한마음으로 A씨의 문제를 해결했듯이, 우리가 함께 취약성이 교차되는 지점에서 방치되어 있는 사회의 구성원들을 돌아보고 이들과 연대하며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길 희망한다.

 

A씨는 곧 서울시 지원주택에 입주하여 자립을 시작할 예정이다. 직업재활시설에도 나가 직업훈련도 받으며 생계를 유지할 계획이다. 그의 이라는 짧은 답에 함축되어 있었을 자립생활의 꿈을 마음껏 펼쳐나가길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