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 칼럼] 난민신청자의 구금에 대하여 - 소수민족 난민신청자 A씨의 이야기 > 동천 칼럼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활동

동천 칼럼

[동천 칼럼] 난민신청자의 구금에 대하여 - 소수민족 난민신청자 A씨의 이야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재단법인 동천 작성일14-08-26 16:28 조회2,320회

본문


A씨는 2006.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입국하였다. A는 방글라데시의 소수민족인 비하리족 출신이다. 비하리족은 1971년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 간의 종교전쟁에서 파키스탄을 위하여 싸웠으나, 전쟁이 끝난 후 어느 국가로도 소속되지 못한 채 방글라데시 내에서 무국적자로 살아가는 소수민족이다. 
방글라데시의 다수 인구가 사용하는 뱅갈어와 구별되는 자신들만의 고유어인 우르드어를 사용하여 타 민족과 쉽게 구별되고, 이에 따라 자신들의 신분을 이유로 차별, 폭력 및 집단적 소외현상의 피해를 받아오고 있다. A씨 역시 본국의 방글라데시 다수민족으로부터 항상 거액의 돈을 요구 받고 이에 불응할 경우 죽이겠다는 위협을 받았다. A씨는 이를 피해서 한국으로 입국하였다. 
이주노동자 체류자격이 있는 동안에는 별다른 걱정이 없었다. 그러나 체류자격이 만료된 후 A씨는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미 그 지역에는 A씨가 한국에 이주노동자로 갔다는 소문이 퍼졌고, A씨가 돌아갈 경우 그들의 타켓이 될 것임은 분명하였다. A는 방법이 마땅히 없어 비자가 만료된 상태에서 한국에서 계속 체류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이태원에서 만난 지인에게 자신이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다. 지인은 A씨에게 "난민제도"에 대해서 설명해주었고, 한국에도 이 "난민신청" 제도가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 길로 A는 난민신청을 하러 출입국관리사무소 난민과를 찾아갔다. 이 당시 A가 체류자격이 없는 채로 한국에 체류한 기간은 1년 하고 23일이었다.
 
난민신청을 접수한 후 A씨는 행정사가 안내해 준 대로 난민신청을 하면 받을 수 있는 체류자격인 기타(G-1) 비자를 받으러 출입국관리사무소 체류과를 찾아갔다. 그 과정에서 A가 위 기간동안 체류자격이 없었음이 드러났다. 당시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는 체류기간이 만료한 후 1년을 경과하지 않은 외국인에 대해서는 이 사실이 발각되면 통고처분을 하고 1년을 넘김 외국인에 대해서는 발각되면 강제퇴거명령을 내리도록 지침을 운영하고 있었다고 한다(이에 대해서 객관적인 자료가 공개된 것은 아님). 
위 1년을 기준으로 체류기간 만료일로부터 1년 23일이 지난 A씨는 바로 보호명령이 내려져 출입국관리사무소 내에 있는 보호실로 보내졌다. A는 겁이 나서 출입국관리공무원이 하라는 대로 파란색 옷을 입고, 한국어와 영어로만 된 서면에 서명을 하고 보호실에서 하루를 보냈다. A씨는 2006년부터 한국에 있었지만, 산업연수 자격으로 입국하여 계속 사업장에서 일만 하였고, "안녕하세요" '밥 먹었어요?" 아주 지극히 간단한 한국말만 알아듣고 말할 수 있었다. 한국어를 읽거나 쓸 수는 없었기에 출입국관리공무원이 제시하는 서면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다음날 A씨에게 강제퇴거명령 및 보호명령이 내려졌다. 마찬가지로 강제퇴거명령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한국어랑 영어로만 쓰여 있었다. 이번에도 출입국관리공무원은 그 서면을 읽고 또 서명을 하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A씨는 그 서면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어 이번에는 서명을 거부하였다. 또한 강제퇴거명령을 집행하기 위한 보호명령서는 받은 적도 없었다. 그 날짜가 2013년 11월 26일이다. 그리고 정확히 오늘 9개월이 되는 날이다. A씨는 아직도 외국인보호소에 "구금(DETENTION)" 되어 있다.
 
비하리족.jpg
<열 아홉살때 찍은 사진을 들고 있는 60살의 비하리족 남성>
그는 미멘신그 지역 안에 있는 방글라데쉬의 팻 고담 캠프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은 41 에이커의 땅을 가지고 있었죠. 우리는 방글라데시 정부가 그 땅을 우리로부터 빼앗았을 때
이 캠프로 이주했습니다.  1971년에 우리는 모든것을 잃었어요"
우르두어를 쓰는 비하리족은 1971년부터 , 방글라데시 시민권을 얻은 2008년까지 무국적자로 살아야 했습니다.
[출처] [The world's stateless] 2) 모든것을 빼앗긴 비하리족|작성자 유엔난민기구
http://blog.naver.com/unhcr_korea/90125853089
 
 
외국인보호소는 교도소나 다름 없는 외국인수용시설이다. 교도소 바로 옆에 위치해서 자연스레 나에게 첫인상도 "교도소"였다.  인신구속이 된 채로 한 방에 10명 남짓 다른 국적의 외국인들과 함께 생활한다. 교도소는 장기 체류가 어느정도 예정이 된 생활공간으로 설계되었다면, 외국인보호소는 강제퇴거 대상자가 임시로 거주하는 시설로 설계된 공간이다. 
대다수의 외국인은 그곳에서 2주를 넘기지 않고 외국으로 출국을 한다. 그러나 임금을 받지 못하거나, 소송이 계속 중인 외국인 등 권리구제절차가 진행된 외국인은 바로 강제퇴거를 집행하지 않고 보호소 내에서 생활하면서 그 절차를 진행한다. 난민신청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거의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을 넘어가는 난민신청과 소송단계를 거치기 위해서는 그 교도소나 다름 없는 그 시설에 구금되어 수형자와 같은 인상을 풍기며, 그런 느낌을 받으며 생활해야 한다. 
교도소와 같이 모두 같은 색의 옷을 입는다. 옷을 잘 교체해 주지 않는다. 특히 여름에는 땀이 나서 옷에서 냄새가 심하게 난다고 한다. 또한 겨울에는 한 벌만 걸치고 있으면 너무 춥다고 한다. 음식도 부실한 것 같다. 한 끼니에 실질적으로 음식재료에 배정되는 예산은 약 1,500원 정도이고, 밥, 국, 김치, 그리고 반찬 하나 이렇게 나온다. 
면회는 실질적으로 담당 공무원의 배려로 조금은 더 긴 시간 면회를 하고 있지만, 하루 2회 30분 면회만 가능하다. 그리고 차단된 면회실 안에서 전화기를 통해서만 대화가 가능하다. 특별면회실이 별도로 설치되어 있지만, 면회를 신청할 수 있는 사람이 영사, 변호인인 변호사, 진정사건을 맡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원 및 직원으로 제한되어 있고, 면회실도 한 곳 밖에 없어 불충분하다.
 
1171550523.974117_djsim_345695_1[585028].jpg
 
그 과정에서는 많은 난민신청자들이 한국에서 난민인정 받기를 포기하고 위험한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서 환승구역에서 이탈하여 다른 나라로 들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도 못하는 많은 외국인들은 그저 외국인보호소에서 3년이고 4년이고 계속 박해의 위험이 있는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차라리 교도소와 다름 없는 외국인보호소에 장기구금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오랜 기간 이러한 보호소 내의 열악한 상황과 그 안에서 고통 받는 난민신청자를 지켜봐 온 활동가 분은 이제는 난민신청을 한 외국인에게 오히려 난민신청절차를 계속 할 것인지에 대해 현실을 직시할 것을 강조한다. 나 역시도 보호소 밖에 있는 난민신청자가 난민신청을 원하면 동천 및 태평양 난민분과위원회 또는 외부변호사를 연결해 주거나, 직접 신청하도록 방법을 안내해 주는데, 보호소에서 만난 난민신청자에 대해서는 엄격한 눈으로 난민사유를 보고, 힘을 주기 보다는 최대한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경향이 생기는 것 같다. 
 
화성외국인보호소.jpg
<화성 외국인보호소>
 
A씨는 참으로 성품이 느긋한 사람이다. 항상 전화가 오면 "안녕하세요, 바빠요? 언제와요?"로 시작된다. 처음에는 한국말을 잘 하시는 줄 알았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이다. 그 다음 말 부터는 에- 에- 하지만 조금만 이야기 해 보면 이 사람이 이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면 항상 우르드어 통역인과 함께 보호소를 간다.
이 A씨가  처음 외국인보호소에 들어갔을 때에는 "제가 불법이라서 여기에 온 거래요"라고 생각하며 있으셨다. 그리고 곧 나갈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더 그곳에 있으면서 보호소 내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다른 난민신청자들은 통고처분을 받고 벌금을 내면 무리 없이 기타(G-1)비자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본인만 왜 지금 여기에 갇혀있는지에 대해서 매우 억울해 하셨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가면서는 얼굴에 힘들어 함이 점점 느껴졌다. 안색도 더 어두워지고, 잘 웃던 사람이 시무룩해 있고, 눈물이 그렁그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외국인보호소는 내가 있는 사무실에서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면 2시간 반 가량이 걸린다. 접근성이 매우 좋지 않아서 한 달에 두 번 이상을 찾아가지는 못하고 있고, 최근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밖에 가지 못한다. 처음에는 특별한 일 없어도 정기적으로 만나러 가야지 생각했지만, 자꾸만 후순위로 밀리게 된다. 그러다보면 한 달, 두 달이 나에게는 꽤 빠르게 지나간다. 그러나 보호소 내에서는 하루 하루가 정말 더디다고 한다. 네달 정도 지났을 때에는 보호소 내의 사람들을 통해 들으셨는지 "Temporary Release"를 하고 싶다고 하셨다.
 
"Temporary Release" 보호일시해제는 구금된 외국인에게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 일시적으로 구금상태를 해제하는 제도이다. 보호일시해제의 사유와 절차 등에 대해서는 보호일시해제업무처리규정이라는 훈령에 규정되어 있다.
보호일시해제를 청구할 수 있는 사유는 매우 제한적인데, 1) 신병치료 목적일 때 2) 1천만원 이상 받을 돈이 있을 때(소송수행을 위해 6일 이상 외출할 필요가 있어야 함), 3) 1천만원 이상의 임대차보증금을 받아야 할 때, 4) 1천만원 이상의 체불임금이 있을 때(고용주의 임금 체불확인서 또는 지불각서 또는 노동부 발급 체불금품확인원이 있어야 함), 5) 배우자 또는 직계 존․비속 등이 국내에서 사망하는 등 인도적 사유가 있을 때, 6)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외국인 여성의 특례에 규정한 바와 같이 성매매피해자로 수사할 때 등의 사유가 있는 경우, 등의 경우에만 가능하다. 그나마도 신병치료에 대해서는 일전에 출입국관리담당공무원으로부터 "생명에 당장의 위험성이 있을 정도에 이르렀을 때"에 해당하는 규정이라는 말을 듣기도 하였다.
게다가 보호일시해제 청구를 하기 위해서는 300만원 이상 2000만원 이하의 보증금과 신원보증인이 필요한데, 이것은 위와 같은 사유를 가지고 있는 보호외국인의 경우에도 보호일시해제를 청구할 수 없게 하는 중요한 제약으로 작용한다. 향후에는 위와 같은 제한적인 보호일시해제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보증방법을 과도한 보증금과 신원보증인이 아닌 다양한 (가능한) 출석 담보 조건을 두는 것이 좋을 것 같고, 보증금 및 보증인에 의한 보호일시해제는 일종의 보석제도처럼 보호일시해제를 엄격하게 요구하지 않는 방법으로 이원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A씨는 오랜 시간 외국인보호소에 있다보니 허리가 많이 안 좋아져서 1)의 사유와 5) 중대한 인도적 사유가 있음을 이유로 보호일시해제 청구를 하였다. 심지어 보증금을 낼 수 있는지 증빙서류를 동시에 요구하여 A씨는 지인에게 돈을 빌리는 등 또 많은 시간을 소요하여 보증금을 마련하여 이 보증금이 담긴 계좌의 통장 사본을 함께 제출하였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보호일시해제 청구기각 결정.
매우 제한적인 보호일시해제 사유를 보면서 한 편으로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거의 5개월이라는 시간이 경과하였고, A씨가 허리통증이 심하다는 것은 전산상으로 기록되어 있을 것이고, A씨의 강제퇴거명령 및 보호명령은 재량 일탈/남용의 가능성이 있어서 지금 소송으로 다투고 있으며, 보증금 300만원 이상을 가지고 있다는 증빙서류를 요구한 점 등에 비추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매우 실망스러웠다. 울컥하였는데, A씨의 마음은 정말 어떠하였을까.
 
한 가지 더! 난민불인정처분 취소소송 또는 강제퇴거명령 취소소송의 1심 승소시에는 보호일시해제를 청구하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으로 해석되는 규정이 있는데, 심지어 그 규정에 해당하는 경우에도 보호소에서
1. 폭행․공용물손괴․방화 등 범죄행위 2. 정당한 사유없이 시위․단식을 하거나 이를 선동하는 행위 3. 자해행위 4. 그 밖에 보호시설의 안전이나 질서를 해치는 행위를 한 경우에는 보호일시해제 결정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A씨 말고 또 보호소에서 연락을 주고 받은 난민신청자 B씨는 권리의식이 투철한 사람인데, 지금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된 상황을 납득하기 어려워 여러차례 항의를 하였다가 여러차례 독방에 가두어지곤 하였다. 이 규정에 비추어보면 B씨는 1심에서 난민인정을 받아도 위 규정을 기초로 보호일시해제를 기각할 것인가? 그러고 생각하니 그동안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저 규정 자체가 굉장히 행정편의적으로 권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재단법인 동천 김연주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