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이집트에도 ‘택시운전사’ 같은 영화가 나올 수 있을까? > 공익법률지원활동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활동

공익법률지원활동

동천은 법무법인(유한) 태평양과 협력하여 난민, 이주외국인, 사회적경제, 장애인, 북한/탈북민, 여성/청소년, 복지 등 7개 영역에서 사회적 약자가 인권침해 및 차별을 받는 경우와 공익인권 단체의 운영에 있어 법률문제가 발생하는 경우에 공익소송 및 자문을 포함한 법률지원, 정책·법 제도 개선 및 연구, 입법지원 활동 등 체계적인 공익법률지원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난민 | [현장스케치] 이집트에도 ‘택시운전사’ 같은 영화가 나올 수 있을까?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재단법인 동천1 작성일19-04-15 17:22 조회2,487회

본문


 

[현장스케치] 이집트에도 택시운전사같은 영화가 나올 수 있을까?

 

I. 난민인정률에 대한 의문

지난 410, 태평양 공익위원회 난민이주외국인분과위 내부세미나가 열렸습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이집트 출신 난민 무삽씨가 난민 인정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세미나는 동시통역과 함께 그의 모국어인 아랍어로 진행됐습니다.

법무부에 따르면 무삽씨가 처음 난민 지위를 신청한 2016, 7,542명의 신청자 중 98명만이 난민으로 인정됐습니다. 1.3%라는 극히 낮은 난민인정률을 보면 그 원인이 궁금해집니다. 신청자 중 진짜난민이 별로 없거나, 국가가 의도적으로 난민 인정을 극도로 제한하거나 둘 중 하나가 원인일 것입니다. 탈락한 98.7% 중 한 명인 무삽씨의 이야기를 들으니, 둘 중 더 심각한 문제가 무엇인지 보였습니다.

 

II. 숫자, 그 이면의 이야기 

무삽씨의 자기소개로 세미나는 시작됐습니다.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사회운동가인 그는 이집트에서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를 위해 앞장섰습니다. 시위를 조직하고 그 현장을 생생한 영상으로 담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2011아랍의 봄때 그 효과가 극대화됐습니다. 이후 변호사들과 함께 정부에 의해 카이로에서 쫓겨날 위기에 있는 빈민들을 돕고,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는 법을 입법하는데 힘썼습니다. 그러나 정부에 의해 센터가 급습 당하고 기록물을 빼앗겼으며, 동료들은 체포 당해 고문과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썼다고 합니다. 최근 이집트 정치에 관한 기사를 찾아보면 이런 언론탄압은 더욱 극심해졌습니다. (“드라마에 찬양 담아라” 이집트 엘시시 정권 철권통치, 한국일보, 2019.04.12.)

가만히 듣다 보니, 그의 이야기가 어딘가 익숙했습니다. 영화 택시운전사가 떠올랐습니다. 특히 19805월의 광주를 알리고자 한 기자들이 정부의 검열에 좌절하고 분노하는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그러면서도 목숨 걸고 사진기에 탄압장면을 담으려는 기자들의 사명감이 빛났던 영화였습니다. 실제로 800명이 넘는 기자들이 강제해직 당할 만큼 신군부는 강력한 언론탄압 정책을 펼쳤습니다. (백발의 해직 언론인들이 한국 언론에 던지는 조언, 미디어오늘, 2018.09.03.) 이집트 시민들은 현재 1980년대의 대한민국에 살고 있습니다. 그 삼엄한 현장에 무삽씨는 카메라를 들고 섰던 것입니다. 생김새도 말도 다르지만, 우리 안에서 그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절박한 심정으로 대한민국에 왔는지 느껴졌습니다

  

III. 가짜 난민으로 둔갑시킨 가짜 심사

한국의 난민심사는 신청서, 면접, 사실조사로 구성됩니다. 사실조사는 재량으로 이뤄지니, 면접이 가장 중요합니다. ([난민법 5주년] 악의적 난민심사 중단하고 제대로 심사받을 권리 보장하라, 난민인권센터) 특히 모국에서의 탄압으로 트라우마를 가진 난민신청자들이 자유롭게 진술할 수 있도록 우리나라 난민법은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난민법 제12) 및 신뢰관계 있는 사람이 동석할 수 있는 권리(난민법 제13)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삽씨가 겪은 현실은 법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습니다.

 

출입국관리사무소의 면접장에서 무삽씨는 이집트인을 향한 편견, 인간적 모욕, 그리고 면접조서의 허위기재를 경험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면접관이 이집트인들이 오직 경제적 이유로 입국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너희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돌아가라라는 말도 들었다고 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그의 난민신청사유는 경제적 목적으로, 난민신청서에 쓴 사유는 모두 거짓말이라고 허위로 기록됐습니다. 위조의 사실도 1차 불인정 후, 이의신청도 기각되고 마지막 행정소송 준비 과정에서 변호사님이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와 유사하게 법무부가 난민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인정한 건만 55건이 넘습니다. ([이슈플러스] 벌려고 난민 신청? 거짓 조서로 엉터리 심사, Jtbc 뉴스, 2018.09.02) 단지 통역인과 공무원 개인의 일탈은 아님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무삽씨는 다행히 태평양과 동천 변호사님들의 조력으로 안전한 삶을 얻었고, 현재는 각국으로 흩어진 동료들과 계속 연락하면서 이집트의 민주화와 한국의 난민인권 향상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며 진심 어린 감사를 표했습니다.

 

IV. 집단이 아닌 개인으로 바라보기

 

a02a0f7b2bb5bb1b8725c742e0ce3ca7_1555315379_3624.jpg

 

무삽씨의 이야기가 끝나자, 변호사님들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부인과 아이는 난민 혜택을 제대로 받고 있는지, 사회운동가라는 직업을 어떻게 증명했는지, 난민지위를 인정받았는데도 불구하고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 법에 관한 질문들이었습니다. 질의가 끝난 후, 한 변호사님은 변호사로서 어느 단계에서 도움을 드려야 할지, 난민 분과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는 소감을 밝혔습니다. 난민이 살아남기위해서는 변호사들의 법적 조력이 꼭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혐오사회」의 저자 카롤린 엠케는 사실상 거기(혐오)에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전체를 대표하는 표상뿐이다’(Emcke, 2017, p.76) 라며 개인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요즘 부쩍 가짜난민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가짜인지는 우선 그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야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공정한 절차에 의해 수많은 무삽씨들이 난민으로 인정받아 고국의 민주주의를 앞당기길 바랍니다. 그래서 이집트에도 택시운전사와 같은 영화를 보며, 험난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한서윤 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