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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은 법무법인(유한) 태평양과 협력하여 난민, 이주외국인, 사회적경제, 장애인, 북한/탈북민, 여성/청소년, 복지 등 7개 영역에서 사회적 약자가 인권침해 및 차별을 받는 경우와 공익인권 단체의 운영에 있어 법률문제가 발생하는 경우에 공익소송 및 자문을 포함한 법률지원, 정책·법 제도 개선 및 연구, 입법지원 활동 등 체계적인 공익법률지원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주외국인 | [기고] 보편적 출생신고 제도, 모든 아동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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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단법인 동천 작성일18-08-01 10:39 조회2,85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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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출생신고 제도, 모든 아동의 권리

 

이탁건 /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제가 일하는 곳은 공익법재단입니다. 태평양이라는 로펌이 사회공헌을 위해 설립하고 지원하는 재단법인인데 난민, 이주민, 장애인, 북한이탈주민, 사회적 경제, 복지, 여성/청소년 등 분야에서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익법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난민, 이주민에 대한 법률지원을 주로 합니다. 소송을 수행하고, 입법활동을 하기도 하며, 서명운동이나 기자회견에 함께 하기도 합니다. 최근 500여명의 제주 예멘 난민 신청자의 입국이 전사회적인 논란으로 비화되며, 난민이주민 옹호 활동도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활동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변호사에 비하면 제가 기여하는 부분은 미미하지만, 70여만명에 달하는 청와대 청원, 날선 배제의 언어로 가득찬 기사 댓글들, ‘평범한 시민들이 개최하는 난민 반대 집회를 보며 착잡함을 금할 수가 없고, 때론 힘이 빠집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규모로 넘실대는 혐오 정서를 보며, 당위에 방점을 찍고 있는 법학이라는 도구가 무력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현실로 담금질한 당위를 나침반으로 삼아 사회가 한걸음씩 나아간다는 믿음으로, 아동의 권리에 대한 당위’, 즉 아동의 보편적 권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이번 지면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동이 출생하면서부터 가지게 되는 권리 출생등록권의 이야기입니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7조 제2항은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되어야 하며, 출생 시부터 성명권과 국적 취득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은 모든 어린이는 출생 후 즉시 등록되고, 성명을 가진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24조 제2). 보편적 출생등록 제도, 또는 보편적 출생신고 제도라고 불리는 제도가 바로모든 아동이 출생 후 즉시 등록될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제도입니다. 출생 등록은 아동 권리 보장의 첫 단추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출생 등록이 되어야만 그 아동이 법 앞에 선 인간으로 인정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출생사실이 등록되지 않으면 국적은 물론이고 법률 상의 신분을 증명하기 어려워 자신의 권리를 보호 받기도 힘들어집니다. 아동의 존재 사실을 국가가 파악하지 못하니 예방접종, 미취학 아동 전수조사 등의 국가 안전망 안에 포섭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극단적인 국내 사례로,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예방접종도 의무교육도 받지 못한 18세 소녀의 이야기가 최근에 알려지기도 하였습니다.

 

현행 법 제도는 한국 국적 아동들의 출생등록을 제대로 보장하고 있지 않습니다. 1차적인 출생신고 의무자가 부모인데, 부모가 신고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경우에도 국가의 감독 및 개입이 미흡하기 때문입니다. 국가기관이 출생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법의 공백 또는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출생등록이 안 되는 경우도 빈번합니다. 얼마 전에 출생신고를 계속 실패하여 어린이집도 보내지 못하는 26개월 아기의 미혼부 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관련 기관이 아동의 권리 보호를 위해서는 출생신고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가지고 현행법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였다면 방지할 수 있었던 사례입니다.

 

외국 국적 아동 앞에는 더 큰 문제가 놓여 있습니다. 이주아동의 국내 출생신고는 현행 법이 인정하는 출생신고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 관공서에 출생신고를 한다고 해도 신고에 대한수리(접수) 증명서의 발급만 가능합니다. 수리 증명서는출생한 사실을 증명하지 않고, ‘신고를 수리했다는 사실만을 증명하기 대문에, ‘출생 증명서의 기능과 효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한국 정부는 국내에서 태어난 외국인들은 본국 대사관을 통해서 출생 신고하면 된다는 입장이지만, 이렇게 출생신고하기 힘든 외국인들이 많습니다. 본국 정부의 고문, 체포 등의 박해를 피해서 한국으로 도망친 난민들이 대표적입니다. 자신이 한국에서 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려는 사람들도 많고, 대사관이 정부에 비판적인 난민의 출생신고를 제대로 접수할 것을 기대할 수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출생신고를 포기하는 난민들이 많습니다. 한국에 아예 영사관이나 대사관이 없는 국가도 30여개나 됩니다. 체류자격이 없는 외국인, 즉 미등록 상태로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들은 출생신고를 하려고 해도 본국 대사관에서 문전박대 당하거나, 몇백만원을 신고비로 내라고 요구 받기도 합니다. 결국 이주아동의 부모가 출생신고 의무를 다하려고 해도 현실적인 장벽 앞에 출생신고를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자신과 무관한 사정으로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이주 아동들은 사실상 무국적 상태에 놓여, 어느 국가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처지가 됩니다.

 

국제 기준에 비추어볼 때 현행 출생등록 관련 법제도의 부족함이 명백하기 때문에,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규약 위원회, 유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규약 위원회,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등 국제기구들이 한국 정부에게 내리는 권고 중 단골 메뉴가 바로 현행 출생신고 제도의 개선보편적 출생신고 제도의 도입입니다. 국내 시민단체들은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를 꾸려 꾸준히 캠페인과 입법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www.ubrkorea.org).

 

여러 국가들에서 이미 채택하고 있고,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에서 주장하는 개선책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분만에 관여한 의사 등 의료기관이 공공기관에 출생사실을 통보하게 하여, 출생사실을 인지한 공공기관이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신고를 조속히 하도록 촉구하게 합니다. 또한 이주아동을 포함한 한국에서 태어난 모든 아동이 출생신고가 될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합니다. 그러나 특히 이주아동의 출생신고와 관련하여서는 정부가 아직 법 개정을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습니다. 주로 드는 반대 이유가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는 것인데, 출생등록권과 같은 아동인권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가 당위를 좀 더 무겁게 받아들이길 희망합니다.

 

이주아동들이 출생신고라는 첫 단추를 꿰었더라도, 이를 기반으로 교육에 대한 권리, 건강할 권리, 보호 받을 권리 등의 기본적인 권리들을 온전히 향유하려면 법제도의 개선이 필요합니다. 기회가 허락한다면 다음 지면에서는 이주아동들에게 가장 중요하면서도 민감한 권리인 체류할 권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 월간 작은책 8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