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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 [현장스케치] 2017년 기초생활보장법 상담활동가 하루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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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단법인 동천 작성일17-06-19 00:00 조회2,30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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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생활보장법 상담활동가 하루학교 후기

I. 새 정부에 대한 기대

새 정부가 들어서고 사회 곳곳에서 변화하는 분위기를 체감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권관련 활동가 모임들은 오랫동안 추진해왔으나 번번이 좌절되었던 법개정을 마침내 이룰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문제제기해도 콧방귀도 안 뀌던 행정부처에서 이제는 먼저 만나자고 제의를 해오니 어리둥절하기까지 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대에 부푼 이들은 4년 넘게 광화문 지하도에서 기초생활보장법 상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외치며 농성을 해온 이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들이 그토록 오랜 기간 주장해오던 것은 무엇일까요? 

II.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사회안전망

학부시절, 사회복지학개론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칠판에 그린 그림이 생각납니다. 칠판 위에서부터 여러 층의 그물망이 있고, 여기서 걸러지지 못하고 마지막 층까지 떨어지는 걸 빈곤층으로의 추락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추락한 이들을 위한 최후의 보루로 존재하는 것이 공공부조, 즉 기초생활보장제도라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빈곤에 처한 누구라도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권리를 보장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크게 벗어나, 절박한 이들에게도 그에 맞는 복지 혜택을 지원하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수급권자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소득인정액 기준과 근로능력평가, 그리고 부양의무자 기준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이 모든 기준을 충족시켜 수급권자로 선정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문제되는 것이 바로 부양의무자 기준입니다. 가난으로 생계를 걱정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그의 1촌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의 부양능력을 판정하여 수급대상에서 탈락시키기 때문입니다. 

부양의무자 기준의 문제점은 무엇보다 100만 명의 비수급 빈곤층을 만든다는 점에 있습니다.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과 같이 이 기준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의 소식을 종종 접하게 됩니다. 수급탈락을 비관하여, 빈곤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환경에 좌절하여, 가족에게 부담을 줘야하는 미안함에 죽음을 선택하는 이들이 더 이상 없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은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여러 단체들이 연대하여 1700일 넘게 광화문에서 농성을 끝내지 않고 있습니다. 


III. 기초법 상담활동가 하루학교 

이러한 문제의식은 일선에서 수급자들을 상담하는 활동가들이 모인 곳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지난 6월 15일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진행된 <2017 기초생활보장법 상담활동가 하루학교>는 수급자들을 직접 현장에서 만나는 활동가들이 함께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전반적으로 다시 살펴보고, 새롭게 달라진 기준을 공부하는 장이었습니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주거복지센터를 비롯하여 일선에서 활동하는 50여명이 다양한 영역에서 참여하여 실무에서 겪은 주요 상담사례를 서로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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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 사례를 들어 보면 안타까운 사연들이 더욱 많습니다. 복잡한 가족 내부의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제도의 잔인함으로 인해, 최우선적 도움이 필요한 빈곤층이 오히려 수급 신청을 하지 않거나 탈락하는 예가 예상 외로 많았습니다. 부양의무자의 소득에서 중위소득을 제한 금액의 30%를 간주부양비로 간주하는 등 가난한 가족에게 높게 요구되는 부양의무는 빈곤한 이들에게 오히려 더 큰 짐을 얹어주는 꼴인 셈입니다. 또한 부양의무자가 부양을 거부하거나 기피하는 경우, 수급희망자가 이를 소명하여 수급자격을 인정받아야 하므로 오히려 가족해체의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족쇄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부양의무자 기준이 아닐 수 없습니다. 


IV.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의 우려점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할 시 우려되는 점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았습니다. 흔히 제기되는 문제점으로 효사상 등 전통적 가치관이 저해될 것이라는 인식이 존재합니다. 즉, 더 이상 가족이란 이유로 부양하지 않아도 되므로 가족 관계가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나의 부모님이 생계급여를 국가로부터 지급받는다고 해서, 나와의 관계가 정말로 약화될까요? 오히려 서로에게 빚진 마음 없이 가까워지지 않을까요? 한 번만 더 생각해보면 얼마나 허구적 우려인지 모릅니다. 이러한 작위적인 부양의무와 간주부양비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관계를 가로막는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이는 증가하는 1인가구 비율이나 변화하는 사회인식을 쫓아가지 못한 인식이거나, 혹은 일부러 회피하여 국가가 부담해야 할 예산을 사적 부양으로 떠넘긴 것이 아닌지 의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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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실제로 넘어야하는 예산의 문제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예산과 비교해볼 때, 이것이 정말 불가능한 비용인지, 불필요한 낭비인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빈곤을 개인의 역량 부족으로 인식하여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도록 방치하고 있지 않은지, 빈곤층에 대한 편견과 차별 의식이 깔려 있어 이 문제를 도외시하고 있지 않은지 다시 돌아보아야 합니다. 빈곤층에 대한 지원이 남발된다거나 또는 오용이 많은 제도일 것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로 보지 말고, 당장 끼니를 걱정하는 절박한 이들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V. 나아갈 방향

문재인 대통령이 부양의무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제도화되기까지는 요원해보입니다. 개정안이 발의되기는 하였으나, 결국 실현될지 여부는 사회구성원 전반의 염원의 정도에 달려 있습니다. 현장의 고민을 실감하면서, 취약계층에 대해 부정적으로 비춰지는 간극을 어떻게 좁혀 나갈지, 한 사람 한 사람 설득하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쓰고 있는 저 역시 돌아보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4년 넘게 농성하며 외치는  소리에 얼마나 그동안 귀 기울였는지, 처절하게 고통 속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이들의 뉴스를 접하고는 내가 관여할 수 있는 일이 뭐 있겠나 하면서 쉽게 덮어버렸던 지난날을 떠올려 봅니다. 특히 로스쿨에 다니는 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나중에 공부 마치고 관심가지면 된다는 핑계를 대며, 내 맘 불편하지 않도록 일부러 회피하던 과거가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세상의 고통을 만인이 다 함께 나누며 동정을 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기울이는 관심은 사회 변화의 작은 동력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저의 지난날의 반성과 더불어, 성장은 아주 작은 변화에서 시작된다는 자각을 담아 보았습니다. 어디선가 읽은 구절이 생각납니다. 넓은 바다에 물 한 방울 더하는 것이 언뜻 무의미하게 보일지라도, 바다를 넘치게 하는 것은 결국 그 한 방울씩 모아진 물의 힘에 달려 있다는 사실! 숨 가쁘게 몰아치는 삶이지만, 자신 안의 무관심에서 벗어나 그늘진 곳에서 변화를 외치는 이들에게 귀 기울이며 공감하는 삶을 통해 아름다운 성장에 동참하면 좋겠습니다.

                                                                                                        -재단법인 동천 권영실 변호사-